엄마의 자살 이후, 15년간의 마음
누군가 스스로 죽으면 남아있는 가족과 친한 친구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각자의 관계와 쌓아온 시간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감정은 혼란스럽게 찾아오고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순서나 시기가 다를 수 있다. 이게 남아있는 가족들을 어렵게 한다. 누구는 분노하고, 누구는 죄책감을 느끼며, 누구는 끝없는 슬픔만을 지속해서 느낀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남겨진 사람은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이 내게 왜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랑 같이 살던 건 나였으므로, 달리 물어볼 곳이 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사람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이 질문을 내게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엄마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엄마의 개인적인 삶에서 이유를 찾아봤다. 당시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유를 찾아봤다. 책과 논문을 보며 이혼, 종교 없음, 경제적 위치 같은 것들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을 고심해보기도 했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 중에서도 이유를 찾아보고, 엄마의 일기장을 살펴보다가 덮었다. '왜'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아봤자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왜 우리 엄마는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잊고 살았지만 살다 보면 종종 떠올랐다. 중학생이던 나는 성인이 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15년이 지나도 떠올랐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엄마가 진정 바란 게 그거였을까? 평소에 무심결에 쓰던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이 거슬려졌다. 엄마는 죽기 전에 와인을 조금 마셨다. 와인잔에 먹다 남은 와인이 남겨져 있었다. 유서도 준비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줘야 할 돈을 정리해 두고, 모든 통장과 집 대출 관련 서류를 모아두었다. 마지막으로 와인을 마셨다. 그렇게 떠났다. 이렇게 잘 준비된 계획이 어떻게 선택이 아닐 수 있을까? 그건 분명 엄마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나를 두고 떠나는 게 엄마의 선택이었다.
내게 남겨진 유서에는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라'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말이 엄마의 삶은 그렇지 않았단 뜻이라서 조금 슬펐다. 15년 즈음 그 문장을 되새기며 살았다. 그런데 문득 올해 처음으로 그 말이 엄마의 삶뿐만 아니라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마지막은 주인으로서 한 선택이 아니구나. 병에 진 거구나. 신체적인 병마와 싸우다 떠난 사람들을 위해 애도하는 것처럼 나도 엄마를 보내주면 되는 거구나.' 그걸 15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아프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왜'라고 떠올릴 때마다 힘들었다. 답을 알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되묻는 내가 한심했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만큼 자살이라는 위험한 선택지에 다가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에 대한 대답을 '아팠다'로 하니 그제야 나는 '왜'에 대해서 되묻는 것도, 엄마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멈출 수 있었다.
하루에 약 38명 정도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선택이 아니라 너무 아픈 나머지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남겨진 사람들은 나처럼 왜를 되묻고 자책한다. 왜를 다시 묻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게 떠나보내는 긴 과정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너무 오래 괴롭힌다면 어떤 유가족이 15년이 흐른 뒤에 알게 된 이 이유도 고려해 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많이 아팠다.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달리 더 아팠다. 정말로 많이.
이 답을 얻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붙잡고 있지 않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까지 1부 「처음 겪는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2부는 「남겨진 마음들」을 이야기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고 직후 눈물조차 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