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목록
고모는 꿈을 꿨다고 했다. 하얀 강아지.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왔고, 한 마리만 품에 안겼다. 다른 한 마리는 아래로 계속 달려 내려갔다고 했다. 품에 안긴 강아지가 나인 것 같다며, 뛰어 내려간 게 엄마인 것 같다며 고모는 우셨다. 남겨진 강아지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스스로를 탓했다.
슬픔, 분노, 원망, 공허감. 많은 것들이 자살유가족에게 찾아온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속에서 내게 가장 선명했던 것은 죄책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는 중3이었다. 너무 어렸다. 그래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가 아저씨 묘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알겠다고 할걸. 전날 문자가 아니라 통화를 할걸. 통화를 해서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엄마가 외할머니가 주셨다는 반지를 내게 끼워졌을 때 받지 말걸.'
많은 것들이 후회가 되었다. 어느 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엄마를 떠올리며 죄책감을 자주 느끼진 않았다. 대신 삶의 모든 순간에서 죄책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모든 관계에서, 그리고 내 일상생활에서도. 내 책임을 빠르게 찾아냈고 빠르게 수정했다. 모든 게 나의 탓은 아니었지만 어디쯤엔 늘 내 잘못이 있었다. 멀어진 친구나 떠나간 연인을 탓하지 않았다. 나를 탓하는 게 더 쉬웠다. 그래서 오답노트를 열심히 적었다.
오답노트는 내게 힘이었다. 내가 상황을 뒤바꿀 수 있는 힘. 덕분에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학교 성적도 좋았다. 이후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오답노트를 잘 적는 기술은 내 인생을 쉽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원하던 많은 것들을 이뤘다. 그러나 다시는 답을 적을 수 없는 문제가 영원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내게 힘이었는데, 들고 살기에는 너무 무거운 노트였다.
자살이란 건 남아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상하게 뒤집는다. 나는 피해자이자, 목격자이며, 가해자였다. 피해자로 사는 것은 사무쳤고, 목격자로 사는 것은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그리고 가해자로 사는 것은 내 스스로를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떠나간 고인도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삶에서 피해를 받고, 내게 큰 가해를 하고 떠난 사람. 엄마를 사랑했던 마음의 크기 만큼, 엄마를 용서하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지나온 생의 오답노트를 펼쳐본다. 목록이 길다. 요즘은 한 줄도 적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답노트 목록을 보며 사실은 오답이 아니었던 것들을 지워나간다. 노트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중이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2부 「남겨진 마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엄마와 함께 행복했던 기억들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