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어른과 울지 않는 아이
나는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울음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지나고, 울면 창피한 나이가 된 중학생이 되어서도 잘 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랑 장난을 치다가 반 아이들 앞에서 넘어졌다. 너무 크게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듯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자 친구들이 놀렸다. "너 쪽팔려서 우는 거지!?" 더 부끄러워져서 아니라고, 아파서 우는 거라며 일부러 더 크게 울었다. 그때 배웠다. 울지 않는 게 낫다는 걸.
상상도 자주 하던 아이였다. 연예인, 대통령, 의사, 공무원... 새롭게 알게 되는 직업들에 내 얼굴을 붙여 상상했다. 다른 상상도 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면, 혹은 반에서 소위 말하는 무서운 아이들이 나를 괴롭힌다면? 수많은 상상 속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것은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중학교 때 학교에서 유명했던 일진 무리 중 한 명이 자살했다는 말이 돌았다. 가출했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자세한 소문을 궁금해했다.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그게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2일장으로 치러졌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다. 나도 학교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금요일에 발견했고, 토요일이 발인이었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장례식 당일 밤이 되자 누군가 내게 장례식장 안쪽 방에서 잠시 잠을 자라고 했다. 잠이 들었다가 깨니, 친척 어른이 울고 있었다. 꺼진 향 앞에서 우는 작은 아빠. 왜 나보다 더 많이 우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장례식장 향이 계속 켜져 있어야 한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 생의 첫 장례식은 엄마였고, 두 번째 장례식은 할아버지였다. 고3이었고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시기였지만 새벽에 전화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에서는 많은 걸 배웠다. 원래 장례는 3일이며,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이 오고, 가족들은 더 큰소리로 울고, 찾아온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정말 슬펐는데도 북적이는 특실 장례식장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던 향이 꺼진 엄마의 장례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왜 울지 않냐고 눈치 없이 물었다. 그때 고모가 나를 대변해 줬다. "많이 우는 게 좋은 것도 아니야."
누워있는 엄마를 보는 건 낯설었다. 가족들은 이혼한 지 10년이 넘어, 거의 남처럼 지냈던 친가 식구들도 엄마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손을 엄마의 뺨에 대보았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도 내게 울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고, 울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뒤로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눈물이 흐르면 그냥 닦았다. 엉엉하고 우는 일은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누구나 한 번쯤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 있다. 모두가 그렇듯이 울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을 겪자, 현실감이 없어졌다. 재미없는 세상.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만 가득했다. 그냥 엄마가 말한 대로 서울에 대학을 가서 멀쩡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서울로 대학을 가자.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교 30등 정도를 했다. 그 이후에는 쭉 전교 3등 이내였다. 슬픔 대신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서울에는 도착했다.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울지도 않고, 심지어 웃으면서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게 어색했다. 울지 않는다는 게 내가 고장 난 증거처럼 느껴졌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부정'이라는 단계를 거칠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을까? 자살유가족들이 가장 위험한 시기는 고인을 떠나보낸 후 3년 이내라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이 지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솔직히 그날이 되기까지를 기다렸다. 그날이 오자 그제야 안심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분명 살아 있었지만, 여전히 소리 내어 운 적도 없었다.
내가 소리 내어 울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다. 울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내 안에 잠겨있던 무수한 의문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심하게 흘러가던 세상은 갑자기 두렵고 무서운 곳이 되었다. 다시 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엄마의 부재는 이미 현실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새로운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순간이 올 거라는 믿음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나는 이 말이 싫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내 몫의 삶도 그렇게 살아졌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2부 「남겨진 마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자살유가족들이 겪는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