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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Aug 11. 2023

 '한 사람을 만난다'는 일

  지난 토요일, 8월 5일에 인터뷰를 했다. 1시간 30분 정도 줌으로 했다. 가슴 속 이야기를 해야 되는 인터뷰였다. 약점도, 아픈 개인사도 꺼내야 되었다. 나는 기사를 써야 했고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헤집었다. 취조하듯이 묻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그럴 권리도, 이유도 없었다. 너스레를 떨고 푼수를 떨면서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했다.

 힘들었다. 다음날에는 몸이 축 처졌다. 그녀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얼마나 불편할까? 어쩌다 보니 나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그녀는 우리 절집에 몸담고 있어서 진행된 일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다. 7월 중순부터 머릿속에 걱정이 둥둥 떠다녔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을 끙끙거리면서 글을 매만졌다. 이리 뒤집고 저리 비틀어 문장을 만들었다. 초고는 흥부가 입은 누더기 같았다.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읽으면 감당이 안 돼서 등짝에 땀이 흘렀다. 그래도 읽고 또 고쳤다.

 신기하게도 글자들은 모여서 단어가 되고 그것들은 문장이 되었다. 문장은 강가에 모래가 쌓이듯 스르륵스르륵 모여들었다. 누더기 같았던 글은 수선집 아주머니를 만난 것처럼 옷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선녀가 입었다는 바느질 자국도 없는 그런 옷은 아니었다.


 수요일 오전에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단어를 고치고 문장을 읽기 좋게 나누었다. 기사 작성 매뉴얼을 반복해 읽었다. 집에서 집중이 안되었다. 답답해서 동네 이디야카페에 갔다. 이디야 2층 유리창에는 거센 빗줄기가 내려쳤다. 사람들이 모여서 카페의 시원함을 즐기고 있었다. 한 구석에는 학생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틈에서 원고를 읽고 고쳤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기분 좋은 백색 소음 같았다. 그 공간 안에서 녹아들었다.


 '뭔가가 부족해,,,  딱 한 끗이 더 필요해!'


조금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이 부족한 년도나 지명이 필요했다. 인터뷰이에게 보낼 질문지를 작성했다. 통화를 다시 한번 할 요량이었다. 가슴이 둥둥둥 울렸다. 어떻게 하면 인터뷰이를 살살 꼬드겨 한 대목만 더 말하게 할까 궁리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말해줘!'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어둑어둑한 안방 화장실은 시원한 냉기가 있었다. 기분 좋게 샤워를 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게 이럴 일이야....'


 한 생각에 꽂힌 마음은 나를 끌고 간다. 그때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 생각에 휘말려 빨려들어간다.


 꿈에서 깬 듯 정신을 차린다. 이 일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이가 이야기한 만큼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 캐물을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글을 쓴다고 누구에게도 이득 되지 않는다. 가진 능력보다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거품처럼 일어나 나를 삼키려 했다. 마음결 고운 그녀에게 실례를 할 뻔 했다.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타인에게 나누는 그녀는 모습도, 마음도 아름다웠다. 긴 시간동안 에고를 지나, 사리분별를 지나 고요히 서 있었다. 그녀는 강물에 결이 다듬어진 커다란 바위같았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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