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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Aug 18. 2023

그녀와 나

 그녀 A언니는 만난 지 오래된 사이이다. 얼굴을 안 지는 13년 즈음되었고 친해진 지는 5-6년 된 것 같다. 그녀는 참하다. 그녀의 단정함과 성실함이 좋았다. 

 우리는 MBTI 검사를 하면 N일 가능성이 높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책이야기, 기도이야기, 남편과 시댁이야기를 풀어내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주 디테일한 설명과 따라오는 감정까지 오래오래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남편이랑 대판 싸웠다. 기분이 별로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편이 락앤락 반찬통을 버렸는데 그녀가 다시 주워놓았고 남편은 또 버렸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기분은 이상했었고 오래전 밤에 시어머니가 다쳤다고 남편을 불렀을 때 남편이 들고 가던 대일밴드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까지 넘나들었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결혼 후 반찬을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A와 남편이 가면 외출복을 입고 기다렸다가 외식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결혼한 90년 대 후반에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녀의 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동생이 다리를 다쳐 입원하면  친정엄마가 아닌 그녀가 가야 했다. 친정엄마는 그날 뭐 하셨냐고 물어보면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노셨다고 대답했다. 멀리 충청도에 사는 동생이 지병으로 밥을 못 먹을 지경이 되면 엄마가 아닌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자기 집이 있는 재료로 반찬을 해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그곳으로 갔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네 언니는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는 말을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고 한다.   

 여동생이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나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싸우고 나서도 내 앞에서 죽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악을 쓰고 싸우는 걸 보고 나면 그다음 날에 엄마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걸 들어야 했다. 지금도 엄마가 전화 오면 불안하다. 어제 엄마가 전화해서 반월당역 출입구를 물었을 때도 그랬다. 놀란 토끼처럼 떨면서 검색했다.  '불안이 뜨는구나'를 인지하고 조절을 시도하는 정도로 마음을 다듬는다. 왜 휴가를 왔을까라는 이상한 자책에 빠지지 않고 '엄마는 길을 잘 찾는다'고 중얼거리면서 내가 해야 할 일로 마음을 보내려고 애쓴다. 


 몇 년 전 남편이랑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편은 욱 하는 성질이 심하다. 결혼 초부터 속을 많이 썩였다. 그 때 한 달 넘게 밤에 잠을 못 잤고 밤새 형광등을 켜놓았다. 불을 끄면 공포가 달려들었다. 가슴이 조여들고 흉통이 심했다. A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나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녀에게 말을 하는 동안에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올봄에 언니는 친정엄마와 갈등이 있었다. 그 날 이후 언니는 침울해했다. 큰 아이의 작장일에도, 작은 아이에게도 의아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 남편에게도 까닭없는 화를 내곤 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얼마 전 A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던 중 언니는 갑자기 감정을 끌어올리며 버럭거렸다.


 "니 남편은 절에도 가고 성당에도 가는데, 이 남편은 말도 안 듣고..."


 갑자기 왜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두근대고 머리가 하얘졌다. 뇌는 얼음이 되었다. 자동반응으로 화를 달래주었다. 


"아이고,,, 언니... 술 먹는 사람들이 술 깨고 나면 착한 척해요... 

........  그러니까 같이 살지요..."



언니는 혼빠진 사람처럼 마무리 한 방을 더 날렸다. 


"그래,,, 사람들이 힘든 것만 이야기하고, 좋은 거는 말 안 하고... 

.......   

나는 들어주는 건 잘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비 오는 처마 밑에서 흩날리는 비를 본다. 집으로 돌아가지도, 그녀에게 가지도 못하고 이 비를 어쩌나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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