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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Nov 10. 2023

 흰 빛처럼 살기

       ㅡ 아름다운 겸양

지난 토요일에 관광버스에 올랐다. 아침 6시 30분 출발이었다. 코로나 전 우리 절에서는 백일마다 모여 입재식이란 걸 했다. 보통 새벽 5시에 출발했다. 4시 40분에는 집을 나서 어둠을 가르고 버스가 달리면 반야심경을 읽고 나누어주는 떡을 먹고 잠들었었다. 하루종일 몽롱하게 졸면서 행사에 참여하고 추운 날에는 기사님의 배려로 버스 안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날이 좋은 날에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밥을 먹었었다.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나들이를 하는 시간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천여 명의 사람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렇게 7-8년을 다녔는데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을 수용할 체육관을 빌리는 일이 힘들어져서 법당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행사를 진행했다.


지루한 날도 있었고 힘이 들기도 했는데 백일마다 모여서 함께 하는 일정은 뭔지 모를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서 새벽에 관광버스를 타는 행위는 내게 신성함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런 일을 책방에서 하게 되면 살짝 흥분이 된다. 버스 안 서른세 명은 여백서원(如白書院)을 만든 전영애교수님 인터뷰 동영상을 조용히 시청했고 차는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고속도로위를 미끄러져갔다.


3시간을 달리고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서원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인삼밭이 있었는데 낮게 드리워진 회색빛 가을 하늘아래 농사를 마무리를 짓는 손길이 날래고 야무졌다. 야트막한 산줄기가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날은 '젊은 괴테의 집'을 개관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의 행보에 감동받은 많은 이들이 뜻을 모아 독일에 있는 괴테의 집과 똑 같이 지었다고 한다. 1층에는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고른 책이 가득한 서점 '지관서가'가 있었고 2층에는 전영애선생님이 번역한 괴테의 파우스트 수제 양장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으로 가죽표지를 만들고 한 장 한 장 엮었다고  한다. 


1층 구석에 앉아 이 책 저 책을 보면서 활자 속으로 빠져들었다. ㄱ,ㄴ,ㄷ,ㅏ,ㅑ,ㅓ, 가 모인 것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다시 의미가 만들어진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내가 모호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언어화시켜 놓은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들은 다시 내게로 걸어와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얼기설기 풀어진 정신은 이야기 속에서 목욕을 하고 몸단장을 한 것처럼 새로워졌다.



선생님은 맑고 고왔다. 세상일을 훌훌 털고 계신 단정한 선비의 느낌이셨다. 그 자리까지 한 눈 팔지 않은 시간의 밀도가 가슴 아렸다. 여린 듯하나 강인하셨고 작은 듯 하나 크신 분이었다. 한 사람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선생님의 아버님 여백 전우순 옹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는 분이라고 한다. 여백 선생은 2005년 85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미터)를 등정한 기록을 세웠고, 별세하기 전 해까지 매년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이라고 한다. 일본 북알프스 등반 기록물 <늦바람 山바람(2001년, 조선일보 출판부)>을 출간하셨다고 한다. 또 91세로 별세하시기  몇 년 전부터 조부가 남긴 문집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하실 때는 38자루의 붓이 모두 망가질 만큼 공을 들이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호를 따서 서원이름을 여백(如白)으로 지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세상 모두를 위해 여백(餘白)과 같은 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하셨다. 음악회가 끝나고 선생님은 노비가 여러분을 잘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들풀처럼 당신을 낮추는 노학자의 진심 어린 겸양이 송구했다. 잘 닦여진 마음자리는 별빛처럼 격조 있는 기품으로 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사람들을 밝혀주었다.


일어로 시를 쓰시고, 그 시를 쿤체 시인이 읽고 바로 독일에서 출간하게 해 주신 분, 괴테전집 24권을 번역하여 출간준비하시는 분 그분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51년 영주에서 태어나시고 초등 6학년 때 홀로 서울 가셔서 공부라는 한 길만 걸어가신 분, 이제 그 열매를 다시 세상에 돌려주시는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 밤, 발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달리기 하기 싫은 날(거의 매일), 글 쓰기 싫은 날(자주 그렇다) 머리에 하얀 눈이 곱게 내리신 할머니교수님을 떠올려 보련다. 나도 그. 분. 처. 럼. 흰 빛으로 살아가기를 꿈꾸어 본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


#여백서원#전영애#관광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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