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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Dec 01. 2023

고추장 익히기

담아 놓은 찹쌀고추장통을 베란다에 내어놓았다. 플라스틱 통이 햇빛에 상할까 걱정돼서  좋아하는 분홍색 체크면보를 덮어놓았다. 아침마다 들여다 보고 잘 있나 살핀다. 혹시 곰팡이가 필까 걱정한다. 고추장 보면서 별 이상한 짓을...




오늘은 정오에 달렸다. 강아래로 가면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따뜻하다. 따순 겨울볕 즐기는 어르신들이 천천히 걸어가신다.  강아지들도 지나간다. 자전거를 타면 허벅지와 손이 너무 시려서 집 앞에서 바로 뛴다. 뛰다가 걷다가 맨발길에 도착한다. 맨발길은 바람이 거세고 다. 차가운 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겨울날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살얼음 동동 뜬 식혜 같은 맛이다. 물론 많이 맞으면 눈물이 끔 맺힌다. 아쉽지만 강옆 맨발길은 조금만 달리고 돌아 나온다. 겨울날 밖에서 하는 운동은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피부도 상하게 해서 적절히 조절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감자튀김과 버드와이져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백수 생활의 백미는 낮에 먹는 맥주다.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간 김에 차가운 맥주를 먹겠다는 결심이  발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집으로 돌아와 감자를 썰어 작은 냄비에 넣고 파사삭 튀긴다. 맥주는 노란빛을 띠면서 유리잔으로 춤추며 미끄러진다.


오늘 아침 못 견디게 힘들어 내 행성 궤도 밖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들의 모습은 내 모습이다. 보아내기가 힘들어서 '일시 정지'시킨 거다. 그다음 일은 모르겠다. 아, 올해 이렇게 원거리로 떨쳐이들있는데... 나는 왜 이모양인지...올해따라 왜 이런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름답게 지내도 되지 않는가... 뭘 이렇게까지 애달복달하면서 속을 끓는지 참 내...


'나는 떼쟁이애기인가 봐...'


고추장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너도 익는데 나는 언제 익으려나...'


익으면 그이들을 데려 올 수 있을까... 감당할 그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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