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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Sep 05. 2023

#2023. 9.5. 화, 사실은 달리기 싫어.

 오늘은 5시 10분에 일어났다. 어제 낮에 마신 막걸리 3잔이  속에 남아 있어서 기분이 좋다. 명상을 하고 욱수천으로 운동하러 간다. 9월인데도 한낮은 여름처럼 끈적하다. 습도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새벽 6시 10분 공기는 상쾌하고 달달하다. 달구벌 8차선 도로 옆 인도에서 자전거를 탄다. 한적한 거리가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욱수천 끝자락 나무들은 물을 한껏 머금고 있었고 풀들이 숲 속처럼 무성했다. 올여름 비가 많고 더웠던 날씨는 식물들에게 최적이었다고 한다. 그것들은 무성한 이파리를 맵씨있게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달리기친구를 만나서 걷는다. 40분 정도 걸었다. 몸이 천천히 풀린다. 왼쪽 엉덩이 근육을 잘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걸으니까 편하구먼!


 어제 오후에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골목 끝에 웬 할아버지가 멍하니 앉아계셨다. 콧잔등에 피가 맺혀있고 자세히 보니 입술 안쪽도 터져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산책을 나왔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지셨다고 한다. 다행히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집 근처라서 댁에 계시던 할머니가 금방 나오셨다. 할머니와 내가 부축해서 일으켜드렸다.

 할아버지는 다리 힘을 거의 쓰지 못하셨다. 다리는 짚단으로 엮인 허수아비같았다. 골반은 금방이라도 한 쪽으로 돌아가버릴 것 같았다. 휘청휘청 걸으셨다. 힘을 쓰지 못했다. 엉덩이, 복부에도 근육이 없었다. 20대 중반 나도 저랬다. 멀쩡한데 걸을 수가 없었다. 다리와 팔은 쿡쿡 쑤시고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의 일상은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병도 많고 주변 인연으로 짊어져야 할 몫이 무거울 때도 많다. 할머니는 칠순이라 하셨는데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도 안정적이셨다. 튼튼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아이처럼 부축하고 가셨다.


 나는 부축받은 순간이 많았다. 아니다. 삶의 매 순간 부축받은 것 같다. 감사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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