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유튜브에서 황농문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읽게 되었다. 교수님은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카이스트에 합격했을 때 몹시 기뻤다고 한다. 그런데 큰 성취 다음 두 번 모두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고백하셨다. 그다음부터는 겁도 났다고 하셨다.
왠지... 짚이는 데가 있다. 분명히 뛸 듯이 좋았는데 그다음 찾아오는 허망감, 불안감, 우울감 같은 마음말이다. 이런 침체된 상태는 스스로가 이해하기 힘들고 타인에게도 공감받기 힘든 감정이다.
나 역시 6년 전에 너무 원하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정말 기뻤다. 그런데 그 후 오랫동안 우울감과 불안에 시달렸다. 배부른 소리 같아서 말하지 못했지만 깊은 상실감에 시달렸는데 이해하기 힘든 그 감정은 참 괴이스러웠다.
그 이유를 책에서 설명해 주었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상태라고 한다.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기분으로 상상된다. 그런데 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통 쪽으로 축을 옮긴다고 저자 애나 렘키는 말한다.
그럼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성취를 멈추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2. 본문 중에서
P36
소비 행위 자체가 약물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이주민인 치라는 내 환자는 온라인으로 물건을 검색하고 구매하는 행위에 빠졌다. 그의 황홀경은 구매 품목을 결정하는 데서 시작해 배송을 기대하면서 쭉 이어졌고, 포장 상자를 여는 순간 끝났다.
P57
1980년대 고전 <<죽도록 즐기기>>의 작가 닐 포스트먼은 비슷한 맥락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서로를 즐긴다. 그들은 생각을 주고받지 않는 대신 이미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문제들을 논의하지 않는 대신 멋진 외모, 유명인, 광고를 논한다.
p64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p68
상자 속 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초콜릿은 뇌의 기본 도파민 생산량을 55퍼센트 늘리고, 섹스는 100퍼센트, 니코틴은 150퍼센트, 코카인은 225퍼센트 늘린다. 암페타민은 주의력 결핍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애더럴 같은 법적으로 허용된 약품뿐 아니라 '스피드', '아이스', '샤부' 같은 길거리 약물에도 들어 있는 성분인데, 도파민 분비량을 1,000퍼센트까지 늘린다. 이 계산에 따르면 메스암페타민을 파이프로 한 번 피우는 것은 열 번의 오르가슴과 맞먹는다.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괘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나는 이러한 자기 조절 시스템을 그렘린(도구나 기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환상 속 존재)들이 쾌락 쪽의 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저울의 고통 쪽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상상하려고 한다. 그렘린들은 어떤 생물체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경향, 다시 말해 향상성을 대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1970년대에 사회과학자 리처드 솔로몬과 존 코빗은 이러한 쾌락과 고통의 상호 관계를 대립-과정 이론이라고 칭했다. "쾌락적 혹은 정서적 중립으로부터 오랫동안 혹은 반복해서 벗어나면 ~~~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란 자극과 반대되는 가치를 갖는 이후 반응(after reaction)이다. 그러니까 옛말처럼 올라가는 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p72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더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p172
마이클에게 약물을 끊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다음에 할 일을 고민하는 게 더 어려웠다. 약물을 끊은 후, 그는 한동안 약물로 감추고 있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렸다. 슬프고, 화나고, 수치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을 땐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이게 더 나빴을 수도 있다. --- 찬물 샤워는 조금 고통스럽긴 했지만 이내 몸이 적응했어요. 그렇게 샤워하고 나오면 기분이 엄청 좋았죠.
p175
도파민은 찬물 목욕 중에 꾸준히 증가했고, 목욕을 끝낸 후에도 한 시간 동안 증가 상태를 유지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처음 30분 동안 가파르게 증가한 다음 나머지 30분 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했는데, 목욕이 끝난 한 시간 동안 약 3분의 1로 줄었지만 두 시간이 지나서도 기준치를 넘어선 상태를 유지했다. 도파민과 노프에피네프린의 수치는 고통 자극 자체를 잊어먹을 만큼 잘 유지되었다.
찬물 목욕이 인간과 동물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다른 연구들에서도 모노아민(monoamone) 신경전달물질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다. 모노아민 역시 쾌락, 동기 부여, 기분, 식욕, 각성 정도 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극한 추위는 신경전달물질의 범위를 넘어선 뉴런의 성장까지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런이 제한된 상황에만 반응해 미세조직을 바꾼다고 알려진 만큼, 이는 정말 주목할 만한 발견이다.
p177
고통은 몸 자체의 조절 항상성 메커니즘을 건드려 쾌락을 이끌어낸다. 위의 그림처럼 그렘린들이 저울의 쾌락 쪽에서 깡충깡충 뛸 때 초기 통증 자극이 나타난다.
우리가 느끼는 쾌락은 고통에 대한 우리 몸의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생리 반응이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절식과 자학으로 육체의 고행을 자처한 일은 아무리 종교적인 이유라고 해도 그에게 약간 쾌감을 선물했을지 모른다.
고통에 간헐적으로 노출되면 본연의 쾌락 설정값은 쾌락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고통에 덜 취약해지고, 쾌락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p184
연구를 종합해 보면 도파민은 '저걸 원해'라는 동기 부여 신호를 주어 신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도파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앉아서 보내는데, 이는 50년에 비해 5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다른 부유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진화되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난 뭔가에 중독되고자 하는 현대인의 기호에 대해 가끔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혹시 신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 즉, 운동은 내가 처방할 수 있는 그 어떤 알약보다 기분, 불안, 인지, 활기, 수면에 더 깊고 일관성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p205
2002년 당시 소득 상위 20퍼센트가 하위 20퍼센트보다 두 배 더 오래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됐는데,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추측이다.
개인적으로 가끔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기 어려울 때가 있다. 깊은 몰입의 '흐름'은 그 자체가 마약과 같다. 몰입은 도파민을 분비하고 특유이 도취감을 낳는다. 이러한 무아지경은 부자 나라에서는 큰 보상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친구와 가족과 맺는 밀접한 관계를 가로막는다면 인생에서 덫이 될 수 있다.
p 226
'피해자 서사'는 보통 우리가 자신을 특정한 상황에 대한 피해자로 보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사례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광범위한 사회적 경향을 말한다. 정말로 피해를 당한 경우에도 그 서사가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지 못하면 치료가 진행되기 어렵다.
좋은 심리치료는 사람들이 치유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이끈다. 자전적 서사가 강이라면, 심리 치료는 강을 지도로 나타내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길로 바꾸는 수단이다.
P231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1960년대에 '거짓 자기 (the false self)'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위니컷에 따르면, 거짓 자기는 참기 힘든 외적 요구와 스트레스 요인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만든 페르소나다. 위니컷은 거짓 자기를 만들면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곳엔 그곳이 없는 셈이다.
소셜 미디어는 거짓 자아가 넘쳐나는 곳이다. 우리로 하여금 거짓 자기를 훨씬 더 쉽게 만든 수 있게 했고, 우리 싦을 현실과 동떨어진 서사로 관리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 실제 생활이 기대한 이미지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이미지만큼이나 거짓된 소외감과 비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정신의학자들은 이 느낌을 현실감 소실(derealization)과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무서운 증상이다.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생을 마감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p248
친사회적 수치심 사이클은 다음과 같이 돌아간다. 과용은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수치심은 근본적인 솔직함을 요구하는 데, 솔직함은 우리가 파괴적인 수치심에서 본 것 같은 외면이 아니라 수용과 공감을 낳는다. 그러면서 벌충에 필요한 행동들이 어우러진다. 그 결과 유대감은 커지고 중독 대상에 대한 의존은 줄어든다.
p279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4. 자기 구속은 ....
5. 약물 치료는 .....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
9. 친사회적인 수치심....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3. 중독과 몰입 사이
애나 렘키 박사는 1967년 생이다. 미국 의사이자 교수이며 작가인 여성이다. 중독과 정신 건강 분야에서의 업적과 지식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중독 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 개선과 치료 방법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 덕분에 내가 왜 요가를 하러 가는지 알게 되었다. 고통의 순간에 설핏 스치는 쾌락의 감정을 느끼면서 내가 좀 이상한가 생각했다. 발레를 오래 한 지인에게 말했더니 '나도 그렇다. 우리끼리 변태라고 농담한다'고 말해주었다. 원장님이 골반을 누르거나 깊은 아사나를 하면 근육 덩어리가 강렬하게 느껴지면서 몸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경험을 하는데 고통 끝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장경인대 자극이 애인도 아닌데 자꾸 생각나는 이상한 상태를 경험한다.
결국 고통과 쾌락의 균형을 맞추는 생활이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는 이론이었다. 성취를 멈추는 건 답이 아니었다.
우리는매일 아침 타인의 sns, 맥주, 탄수화물, 수다, 쇼핑으로 시간을 채울지 에너지를 돌려 산책, 명상, 운동, 읽기와 쓰기를 할지 선택해야 한다. 후자는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그래서 오늘도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고 읽기와 쓰기를 나에게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