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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Jan 09. 2024

#17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작가는 은유님, 책 표지는 내가 좋아하는 꽃분호 옹~이다. 그간 발표한 글을 모아서 낸 산문집이다. 초판은 2016년이다.




 

<책 중 에서>


ㅡ 그도 나도 똑같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다가 결혼을 했는데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 편입되는 순간, 여자인 나는 계속 뭔가 불리했다. 자식을 대하는 양가 부모의 태도도 달랐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밀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 잠들곤 했다. --- 이론의 주입은 가능했으나 감각의 세팅은 불가능했다.


ㅡ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ㅡ 생의  울컥한 일상을 추스르며 적어간 글 중 아직 어느 책에도 실리지 않는 기록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와 <한겨레>에 가장 최근까지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이다.


ㅡ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ㅡ 엄마도 싫고 엄마를 닮은 나도 싫었다. --- 엄마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당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했다. 기존의 가치 척도인 '선악'을 넘어서지 못했다.


ㅡ 우리 사회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 - 정상인과 비정상인, 부자와 빈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엄마는 자유롭지 못했다. 비정상인이 된 아들과 빈자가 된 딸을 삶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아무리 성당을 나가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주님을 찾아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 나는 집이 좁아도 괜찮다. 오빠도 몸이 불편하지만 자유롭게 잘 살지 않느냐, 왜 내 행복을 남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내 집 마련해서 가정 꾸리고 사는 자식 보는 것을 부모 임무의 완결판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설득하기엔 논리가 부족했다.--- 정상 가족의 판타지를 버리지 못하는 한, 엄마의 자리에서는 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ㅡ 할 말, 못할 말, 들을 말, 못 들을 말, 찬란한 말, 쓰라린 말, 참담한 말, 간절한 말, 희미한 말, 비정한 말, 흔드는 말, 지독한 말, 다정한 말, 희미한 말, 지독한 말, 다정한 말, 사는 동한 숱한 말의 숲을 통과한다.


ㅡ 코로 글을 쓰는 그는 연극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강의도 한다. '장애의 이해'란 주제로 인권 교육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말투가 어눌한 그를 강사보다는 딱한 장애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 이 촌극 같은 상황을 두고 동정심만 키운 망한 교육이라며 그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한다.


 "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최승자 <이제 가야만 한다>







고통스러운 것은 누굴까 나일까, 마음일까, 생각일까,

고통은 이름을 불러주면 멈출 가능성이 있다.

모르는 척하면 곧 조용해지지만,

언제 나를 쓰러뜨릴지 모른다.



우리들이 말하는 '남'은 도대체 누구일까?

동네사람? 친척? 계모임친구들? 길가는 사람?

아니면 내면에 있는 뭔지 모를 도덕적,  사회적 시선?


많은 딸들이 엄마에게 분리되지 못한 채

서로 얽기고 설켜

힘들어한다.


왜 딸들에게 당신의 죄절한....... 욕망을 투사할까.

가끔 그 욕망이 이 세상에서 실현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그런 마음을 며느리에게, 나쁜 것은 다 며느리에게  투사하곤 했다.

이제는 그랬다가는 아들 이혼남 만들까 봐

당신들의 모든 욕망, 결핍을 딸들에게 투사한다.



깨어나지 못한 의식이

서로를

멍들게 한다.


그것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일어나서

아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은유#서해문집#2022.1.8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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