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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Mar 11. 2024

2024.3.11.월, 가벼움.

남편은 작년에 나와 크게 다투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고급진 말로 메타인지가 생긴 듯했다. 퇴직하면 산에 들어가서 살겠다면서(남자들이 많이 하는 뻥이다) 목공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술 많이 먹는 남자가 싫은 이유는 여러 가지... 가 있지만 제일 싫은 건 술 마신 다음날 뿜어내는 무기력한 기운이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옆사람을 거친 기세로 휘감고 팔다리를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한다. 당사자는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널브러져 있고 힘이 다 빠진 배우자는 죽을힘을 다해 2-3인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진땀 빼는 시간 끝에는 깊은 우울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곤 했다. 


남편은 1년 동안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종일 공방에 머물렀다. 그는 자기표현이 안 되는 사람이다. 갈등상황에서 감정과 생각을 찾지 못하고 회사일이나 술로 회피하는 사람이었다. 어젯밤 그를 안 지 30년 만에 이런 말을 들었다. 어제 남편은 자격증 시험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시간 내에 작업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냥 완성하는 거랑 시간 내에 완성하는 거랑 기분이 정말 다르네, 공방에 가면 폰을 안 봐서 참 좋다!"


아아... 말 못 하던 아이가 첫 말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내 10년 기도가 이런 그림으로 나타날 줄이야!!! 


오늘 아침 몸이 유난히 가벼웠다.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남편을 만나서 그런거 같다. 통하면 살고 통하지 않으면 죽는다 했는데 아주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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