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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Mar 27. 2024

불행 battle



토요일에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토할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 아들이 소파 위에 있는 책을 보더니 자기는 힘들어서 중간에 덮었다고 한다. 나도 중반부터는 적당히(?) 읽었다. 잔인함과 무력감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다시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 읽을지 알 수 있다. '죽고 싶다'생각이 자꾸 일어날 때 읽을 것 같다. 유가족들에게 죄송 .........................................................................................


토요일 낮에는 한강 소설을 읽고 저녁에는 엄마를 만나러 갔다. 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엄마는 오리백숙이 맛있다고 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90년 봄날은 화창했다. 아마 4월이나 5월이었겠지. 1학년이었던 나는 3학년 선배가 시청각실로 오라고 해서 갔다. 흑백 비디오를 하나 보여주었는데 사람들을 마꾸 때리고 밟고 줄지어 끌고 가는 영상이었다. 잔인한 장면은 삭제되었지만 상황이 몹시 지독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디오를 보고 가슴이 흔들린 동기들은 운동권으로 들어갔고 게으른 나는 우호지지자로 학교생활을 했다. 빚진 기분이었다.


엄마와는 미리 약속이 되어있었다. 수요일 즈음부터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화분 분갈이를 했다. 집에 한나절 이상 있으면 서서히 침범해 오는 어떤 덩어리가 있는데 그 분은 묘하다. 예쁜 수국과 라벤더를 분갈이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아... 죽고 싶다...'라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오는 걸 들었다. 그 느낌은 상담에서도 말한 적이 없는데 남편 주사나 아버지의 폭력 이야기가 더 급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앞에 앉혀 놓고 아버지, 삼촌, 고모는 인간 안 되는 것들이라고 자주 악을 썼다.  '니 삼촌, 니 고모, 니 아버지'라고 말할 때 내 얼굴은 화끈거렸고  꼭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은 '그때는 내가 마, 딱 죽고 싶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들은 소화되지 않고 가슴 어딘가에 얹혀 있다. 아버지는 13년 전 돌아가셨고 기도도 많이 해서 그런지 폭력의 기억이 흐릿해지는데 엄마가 내게 던져 준 감정은 살아서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이제 그것들을 만나야 할 때인가 보다. 엄마가 던졌지만 내 안에 살고 있어서 내가 해결해야 된다. 오랫동안 힘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엄마에게 쫓아가서 그 날들을 토해내고 싶은 충동이 버겨웠다. 


지난 설 연휴 전 날 엄마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아이들, 남편과 친정으로 갔다. 초인종은 오래전에 고장 났고(돈 든다고 절대 고치지 않는데 엄마 자산은 충분히 넉넉한 편이다) 엄마는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 엄마집은 3층인데 1층대문을 안에서 길쭉한 쇠막대로 걸어놓아서 방법이 없었다. 근처 카페에서 1시간을 기다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불안해졌다. 아이들은 울려고 했다. 결국 119를 불렀다. 우리 머릿속 상상은 '엄마가 쓰러졌다... 아니면 넘어져서 꼼짝 못 한다'였다. 동네가 떠들썩하게 구급대가 오고 대원들이 이동침대를 끌고 왔다. 대문을 부수는 것보다 2층 복도 바깥 창살을 자르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고 2층 창문으로 소방관이 진입했다. 3층으로 가니 엄마는 이를 닦다가 나와서 '왜 이라는데, 무슨 일이고?'라고 말했다. 화가 많이 났다.


딸아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그때 엄마도 울었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서 엄마는 잊지 않고 이런 말을 했다.


"어떨 때는 고마 딱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들은 말을, 대를 이어 내 아이들도 들어버렸다. 나는 또 길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를 달래는 건 내 평생의 과업이었으니까..."엄마... 서울대 교수가 말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


달 만에 엄마를 만나러 갈 날이 되니 그날 들었던  말나를 찾아온 것 같다. 엄마는 우리에게 던진 말이 어떻게 작용하지는 모르겠지...  종종 내 안에서 울려 나오는 죽고 싶다는 소리들(근데 나는 절대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가끔 누군가가 너무 미워지는 것도 혹은 어떤 이에게 지나치게 절절 매고 있는 것도 모를 거다.


남편에게 맞는 여자가 불행한지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는 걸 보는 딸이 더 불행한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너희(두 딸)는 괜찮다고 말한다. 도망가고 싶었는데 너희 때문에 살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셋은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불행 battle게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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