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딸아이가 내려왔다. 겨울 내내 인턴 원서를 내면서 속앓이를 하는 듯했다.
나는 딸을 품 안에 답삭 끌어안고 물고 빠는 사랑은 할 줄 몰랐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표현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정은 유교세상이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할머니는 생활력이 강한 분이었고 엄마는 일 잘하는 순응형이었다. 할머니도 엄마도 자식을 드러내놓고 예뻐하는 성정은 아니었다.
딸아이가 방학에 내려오면 같이 뛰었다. 오늘 아이는 5km 뛰기를 계획했다. 먼저 갈 거라고 말했다. 강은 어제 내린 비로 철철 넘치게 흘렀고 햇살은 물살 위에서 반짝였다. 젊은 아이는 빠르게 달려갔다.
아이가 멀리 사라지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나처럼 살지 말라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처럼 살지 말고, 해결되지 못한 부모의 감정덩어리에 묶이지도 말라고...
너는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라고,
내 엄마 예여사도 아닌, 나 보리안도 아닌, 너 자신으로 살면서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게 네가 할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