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그 남자의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by 보리별


하루키는 1987년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으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일본을 넘어 미국까지 알려진 유명한 작가이다. 젊었던 20대에 그가 쓴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지만 넘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의 글은 마음 바닥을 끍어대는 심란스런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왜 그런 느낌에 싸여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했다. 그런데 무얼 읽었는지 생각이 나지는 않고 몽롱한 기분에 시달린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쓴 수필은 완전히 달랐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실제 생활을 솔직하게 보여줘서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수필들도 아마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 즈음 읽었으니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마라톤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고 보스턴마라톤대회에 나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신기했다. 그가 카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생 면접을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그리스 섬에 가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면서 글을 쓰는 게 참 부러웠다.


그가 이번에 펴 낸 에세이는 그의 인생을 총정리한 것 같다. 그는 49년생이다. 우리 아버지보다 4살이 어리다. 일본이 45년에 2차 대전에서 패전했으니 전후 세대다. 79년, 서른 살 즈음에 등단했다. 그의 표현대로 카페 경영 시절을 차곡차곡 쌓은 뒤에 쓴 글이다. 돈벌이를 해본 것과 하지 않은 것은 차이가 많다.


하루키는 지금도 매일 10킬로를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도 달리기를 해보았는데 그게 하기 싫고 힘든 운동이다. 혼자 해야 되고 날씨의 변수도 많다. 비가 오면 은근히 기쁘다. 뛰지 않아도 된다고... 어제도 아침에 3킬로를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혼자 헐떡거렸다. 매일 10킬로를 뛴다는 것은 인격의 완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 힘으로 그는 매일 20매를 쓴다고 한다. 더 쓰고 싶어도 그만하고 덜 쓰고 싶어도 꼭 채운다고 한다. 마음이란 게 더하고 싶은 날, 하기 싫은 날로 요동을 치는데 그는 자기 마음을 조복 받은 것이다. 그런 강단 없이 글쓰기 세계로 들어가 작가로 밥을 먹고살 수 있겠는가...


그가 찍은 책표지 사진을 오래 보았다. 팔과 어깨가 단단해 보인다. 팔뚝은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과 다르다.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적당히 길러진 수염, 미간에 살짝 패인 주름... 표정은 약간 굳은 듯하다. 눈빛은... 눈빛은 살짝 흔들려 보인다. 작가가 느끼는 깊고도 섬세한 감정의 결이 눈 안에 있는 것 같다.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 재능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뛰어난 작품을 써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내 경우를 실례로 들고 나서는 건 약간 면구스럽기는 한데, 이를테면 나만 해도 소설을 쓰기 위한 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작정도 딱히 없었고 미친 듯이 습작을 써본 적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바람의 모래로 들어라>라는 첫 소설(같은 것)을 썼고 그걸로 문예지의 신인상을 탔습니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전문 영역의 사람이 로프로 넘어가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포용적이고 대범한 게 아닐까요.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라는 태도를 많은 작가들이 취하고 있습니다.


--- 또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일부러 스토리 하는 애매모호한 fuzzy, 혹은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용기'를 꺼내 들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조합해서 언어화하면 사람들은 수월하게 납득하고 감탄하겠지요.


---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 소설가란 어떤 종류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물속에서 항상 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서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이십 년 삼십 년에 걸쳐 직업적인 소설가로 활약하고, 혹은 살아남아서 각자 일정한 수의 독자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소설가로서의 뭔가 남다르게 강한 핵 core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게다가 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혹은 오히려 쓰지 않는 편이) 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라는 사람이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설을 씁니다. 그런 사람을 한 사람의 작가로서 당연히 마음을 활짝 열고 환영합니다.


링에, 어서 오십시오.


리키 넬슨이 만년에 발표한 노래 <가든파티>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출판:현대문학#발매: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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