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약하다.
아주 취약하다. 인정해야 한다.
지난 일요일 오전 6시에는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 참가한다고 의사 표현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일요일 아침에 누가 전화를 했다. 깜짝 놀랐다. 회의를 깜빡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허둥지둥 노트북을 켜고 줌에 접속했다. 6시 2분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와 또 다른 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첫 마음 나누기에 지목되어서 말을 해야 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등에 땀이 흐르고 마음이 불편했다. 주제에 대한 찬반표결을 해야 했는데 나 포함 2명만 반대를 표명했다.
갑자기 사회자가 '반대를 철회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잠이 덜 깬 나는, 지각까지 해서 마음이 어수선한 나는 속으로 어버버 하다가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한 번 더 표결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기권을 선택했다. 다시 철회하겠냐는 질문에 버벅거리면서 '말을 해도 되냐고'물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반대를 했고 철회를 하겠다고 말했다. 말하는 중에 '안 들립니다'라는 채팅이 화면에 떴다.
생소한 진행에 당황했다. 말이라면 어디서도 지지 않는 나였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줌에서 하는 말은 상대의 반응을 알기도 어렵고 현장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산에서 혼자 부르는 메아리 같았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 나에게 지각을 한 나에게 전화까지 하게 한 나에게 자책이 들었다. 많이 들었다. 아주 아주 취약해져 갔다.
회의는 원활하게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소감을 하라고 해서 가볍게 했다. 다음 사람이 소감을 하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앞사람 말이 안 들려서 끝이 난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 안건 중 하나를 거칠게 비난했다. 그 비난은 나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지지한 안건이었다. 그녀는 심통 가득한 얼굴로 발언을 마쳤고 사진 찍을 때도 누군가를 째려보면서 골이 난 표정이었다. 지난달 회의에서도 거친 말로 누군가를 비난했다. '일을 하기는 싫고 의견은 낸다'는 취지의 말을 무례한 태도로 뱉었다.
그녀의 얼굴은 남편과도 닮아 있었고 시아버지와도 닮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화를 버럭 내는 순간과도 닮아 있었다. 화내는 사람, 짜증 내는 사람의 표정과 태도는 비슷하니까...
그날 아침 이후 나는 현저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조금씩 조금씩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일로 침몰하냐고 말하면 눈물이 난다. 왜 그런지 알고 있다. 하지만 침몰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오들오들 떠는 아이처럼 가라앉았다.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무력감이 들었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기분, 감정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한 번 시작되면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보아주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시작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유 없이 혹은 상황보다 과장되게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왔다. 어릴 적 거의 매일 지적받고 비난받았다. 나는 더 완벽해야 했고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했고 더 공부를 잘해야 했고 더 칭찬받을 행동을 해야 했다. 더더더 감정을 억압해야 했다. 원가족에서 나는 아이일 수 없었다. 엄마, 아버지보다 더 완벽한 어른이 되어야 했다.
일요일 저녁 가족과 밥을 먹으면서 가라앉은 내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식사시간은 싸늘했다. '이게 이럴 일인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내 감정은 이미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요가원 수련을 마치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한참 어린 친구에게 아.. 잘해서 짜증 나... 이랬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겠다.
'나는 지금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
부정적 감정은 전이되고 엉뚱한 사람에게 투사된다.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