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

과거를 바꿀 수 있는가

by 보리별

지난 설날 연휴에 기도를 했다.


주변 영향을 받았다. 브런치에서 만 배 기도 하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자그마한 싹이 올라왔다. 또 <융 읽기> 모임의 리더분이 '안거(절집에서 겨울과 여름에 하는 집중 수련)'에 들어간다는 말도 극이 되었다.


연휴가 시작된 월요일에는 비가 왔다. 새벽에 비가 오는 걸 보고 조금 더 자다가 팔공산 갓바위로 향했다. 산 아래쪽 순두부집 근처에 버스 3대가 서 있었고 기사님들은 바깥에서 눈풍경에 빠져있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겨울 갓바위는 처음이라서 용감하게 올라갔다. 바닥에 눈이 포슬하게 깔리고 나뭇가지 위에도 눈꽃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경치에 홀렸다가 '이거 좀 위험한데...' 하는 순간 커브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90도로 꺾이는 길인데 오르막 경사가 45도가 넘어 보였다.


'아, 이래서... 기사님들이 안 올라가고 있구나...'


고바위길을 간신히 올랐다. 한숨을 내쉬고 엉금엉금 차를 돌렸다. 아찔한 내리막을 두 번이나 꺾었다. 눈이 무서워졌다.


갓바위는 오를 수 없어서 동네 절로 갔다. 그 절은 수십 년 전 자그마한 세 칸짜리 법당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3층 건물을 지어 올렸다. 3층에는 부처님과 협시 보살 두 분이 계신다. 부처님과 보살상은 형상미가 빼어나고 색채도 좋다. 보통 금빛으로 마감을 하는데 옷자락을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했고 부처님 얼굴 뒤 광배도 신비감이 들게 만들었다.


법당에 도착했을 때는 사시기도 중이었다. 방석을 깔고 급한 마음에 빠르게 절을 했다. 호흡은 헐떡거렸고 몸동작은 거칠었다. 사시 예불이 끝나고 옆자리 할머니가 내 자리는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옆 보살님은 방석을 한 개 더 주시면서 두 개 깔고 하라고 거들어주셨다.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3층 법당은 천장이 높았다. 높은 벽 쪽 창에서 햇살이 가늘고 길게 들어와 부처님 얼굴을 지나쳤다. 양쪽 벽에는 난간이 있었다. 복도처럼 길게 난 자리에서는 부처님 얼굴을 내 시선과 같은 높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음력설에는 기도를 많이 올린다. 법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가 텅 비었다가를 반복했다. 빛도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부처님 앞에 놓인 촛불만 무심히 일렁거렸다. 부처님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바로 옆에 계시기도 했다.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로 느껴졌다가 삼촌같이 느껴졌다. 무덤덤하게 나를 보는 듯하다가 따뜻하게 웃어주기도 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절에 집중했다. 숨이 차올랐다가 허벅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반복됐다. 속도를 더 내야 했지만 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통 3일 동안 만배 정진한다. 하루에 3333배를 해야 한다. 누가 해주는 밥을 먹고 12시간 이상 빠른 속도로 절을 해야 한다. 숨이 헉헉 차는 속도를 유지해야 삼천배를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월요일에 2500배를 했다.


둘째 날 화요일 아침 절을 시작해 보니 어제처럼 속도를 올릴 힘이 없었다. 오전 절을 마치고 계산을 했다. 1300배를 6일 하면 만 배를 맞출 수 있었다. 갑자기 시간과 여유가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근처 식당에 가서 메밀묵밥을 한 그릇 먹고 카페에 가서 차도 마셨다. 마침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오랜만에 근황을 나누고 헤어졌다.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절을 했다. 연휴는 잘 흘러가고 있었다. 친정도 시댁도 가지 않고 내 시간을 온전히 가진 건 평생 처음이었다. 법당에서 절을 하면서 고요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그랬다.


'이렇게도 재미나게 놀 수 있구나, 편안하고 좋다...'


법당도, 법당 마당도 고요하고 내 마음도 고요했다. 법당 옆 작은 야산에는 겨울나무가 봄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벌써 봄이 느껴졌다.




화요일은 바닥으로 내려가는 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호흡을 깊게 해야 수월하게 바닥으로 몸을 내릴 수 있었다. 다리 힘만으로는 힘들었다. 갈비뼈를 부풀려 몸을 풍선처럼 만들었다가 내려갈 때는 조금씩 공기를 빼면 몸통과 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1300번을 내려가는 일은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괴로운 일이 되었다. 내 몸을 타인의 것처럼 가만가만 다루어야 했다. 평생 처음 갈비뼈 호흡을 많이 했다. 오후가 되자 양쪽 갈비뼈 사이사이 근육이 타는 것처럼 아파왔다.


수요일에는 갈비뼈 통증이 없어졌다.


목요일에는 다리 안쪽 내전근이 딱 붙었다. 몸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양쪽 무릎은 N극과 S극처럼 착 붙었고 내전근은 열심히 일을 했다. 내전근만으로 몸이 세워졌다. 목요일 내내 골반은 살짝 뒤쪽으로 물러나고 허벅지는 내회전을 했다. 살짝 X다리가 되어주었다. 본래 내 허벅지는 외회전 되어 있고 O다리이다. 내회전 되니 치골과 골반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무릎도 살짝 내회전 되어 일어서기가 편했다.


금요일 오후에는 배꼽 아래에서 무겁고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속근육 같았다. 주먹 2개 정도 크기였다. 배아래쪽 깊은 곳에서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켜주었다. 전신을 끌고 갈 만큼 힘이 좋았다. 허벅지나 무릎이나 발목 힘을 쓰지 않아도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계속 붙잡고 싶었지만 잠시 후 사라졌다.


'아... 이 근육을 쓰면 관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토요일에는 하기 싫은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적당히 해도 만 배가 될 것 같은 오만함이 올라왔다. 지루함도 생겼다. 절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법당 뒤에서 유튜브를 보고 사고 싶은 가방 검색을 했다. 딴짓을 한 거다. 그날은 비가 오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법당 뒤 의자에 앉아 폰을 보는데 등 뒤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절을 많이 한 몸에는 열기가 가득했고 거만해진 나는 찬 바람 따위는 무시하고 계속 검색질을 했다.


일요일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법당에 가기 힘들었다. 집에서 절을 시작했다. 조금 하고 누워 있다가 다시 절을 했다. 일어날 때마다 양쪽 고관절이 아팠다. 집에 있는 프랑킨센스 오일이 생각났다. 양쪽 고관절에 발랐다. 오일 덕분인지 몸이 풀린 건지 통증이 사라졌다.




나에게는 과제가 몇 가지 있다. 부모님과 관계가 그중 하나이다. 부모님은 많이 싸우셨다. 자식들 앞에서 더 강렬하게 싸웠다. 그 기억은 내 머릿속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나를 흔들었다. 단단히 맺혀있는 정서적 지점이다.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집에서는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을 일상적으로 뱉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하는 언어와 행동에 필터 없이 노출되었다.


엄마는 헌신적이었지만 '헌신'은 없었다. 행동은 헌신이었지만 마음은 화가 가득했다. 이중 메시지가 많이 나왔고 불만이 생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화나게 하는 수동적 공격을 했다. 아버지는 발끈하고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엄마는 '봐라, 저 인간이 이렇게 나쁘다'를 온 가족에게 보여주었다. 박해당하는 엄마는 가족들에게 동정과 인정을 받았고 아버지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불쌍한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엄마가 도망가거나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공포로 똬리를 틀었다.


최근에야 엄마의 삶이 매번, 매 순간 불행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랫동안 꾸던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엄마의 에고는 엄마를 피해자와 박해자로 규정짓게 했고 엄마는 아직도 그 불행인프라 속에 살고 있다. 잊을 만하면 내게 나타나 동정과 눈물로 당신 인생이 가련하고 괴롭다고 한탄했다. 아버지, 고모, 삼촌을 미워하는 말을 구정물을 뿌리듯 나에게 던졌다.


'니 삼촌이,,, 니 고모가...'


라는 말을 2-3시간 동안 들으면 엄마를 불행하게 만든 건 삼촌이나 고모가 아니라 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채무감을 어떻게 갚아야 하지'라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쩔쩔맸다. 잠이 들 때 엄마 목소리가 떠오르고 아침이면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쩌나 라는 생각에 눈을 떴다.


엄마가 나에게 던진 악몽이 꺼지고 가만히 살펴보니 진실은 조금 달랐다. 엄마는 큰 며느리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과 지지를 받았고 아버지는 그 시절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었지 악마가 아니었다. 호인이었다. 경제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받은 유산을 잘 간수해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다정함도 있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엄마의 투사적 동일시가 아버지를 무능하게 만든 면도 없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엄마가 들으면 나쁜 자식이라고 하겠지...). 엄마는 매일, 매번 아버지 원망을 했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불행함을 강조했다. 그게 엄마의 무의식적 패턴이었다. '나는 착하고 저 사람들은 나쁘고!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저 사람들이 나를 괴롭힌다.'





만 배를 하면서 큰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일이 떠올라서 가슴 아팠다. 참회와 자비관을 보냈다. 아버지의 거친 욕설과 엄마의 울음 그리고 쨍쨍하게 울리는 험담 장면도 떠올랐다. 외면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또 다른 장면들도 영화처럼 떠올랐다. 도망가지 않고 담담히 봐주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지나가고 한 구석에서 떨고 있는 '내'가 보였다. 영화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얼음처럼 굳어서 싸우는 부모 사이에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호흡은 거칠고 심장은 두근대다가 몇 시간씩 이어지는 싸움에 정신이 흐릿해지고 몸이 축 늘어졌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몸을 덮쳤다.




일주일 동안 이런 장면들을 보았다.

가슴이 무겁기도 했다가 화가 불같이 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달려가 퍼붓고 싶은 마음도, 내가 겪은 만큼 엄마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일요일 저녁 만 배에서 300배가 남았다. 내가 어떻게 9700배를 해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골반이 중립자리에 일자로 제대로 서 있었다. 치골과 꼬리뼈도 제자리에 있는 기분이었다. 고관절도 골반에 정확히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있어야 할 것이 딱 제자리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정렬은 처음이었다.


그때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있어 감사하다!


나는 나, 엄마는 엄마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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