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et 2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보리별


모네를 만나고 그 앞에 있는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빵도 매장에서 굽는 집이었다. 맛난 맛이었다. '더 현대 서울 현대백화점'은 건물이 훌륭하다는데 정보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 환기미술관으로 갔다.

스물두어살 시절 가끔 서울에 갔었다. 아침에 경산역에서 무궁화를 타고 올라갔다. 당시 서울역은 둥근 돔이 달린 구역사였다. 역 앞에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인사동을 가서 그림을 보고 어느 미술관(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김환기 선생님 작품을 만났다. 환기 선생님의 청색과 가장자리에 찍혀있는 원색 점을 보며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있다. 환기 미술관은 1992년에 개관했으니 여기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응노 화백의 사람 그림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미술관이 닫혀 있다가 24년 12월에 새로 개관했다. 재개관 특별전은 '영원한 것들 -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올해 7월27일까지 전시한다.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가고 싶었다. 특히 <달관 - 수향 산방>에 전시된 ‘듀엣’이 너무 좋았다. 김환기선생님의 호 '수화'와 김향안의 '향안'에서 한 글자씩 따서 당호를 '수향산방'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1974년 61세에 세상을 떠나자 김향안여사는 남편을 기릴 수 있는 미술관을 구상했고 1992년 개관했다.


부암동은

옛날 시건정 약수터 못 미쳐가 되므로

좋은 물줄기가 있을 거라고 검사를 시켰더니

금방 물줄기를 찾아내고

아주 맛있는 약수가 나왔다.

미술관 터에 물이 있는 것은

메타포(metaphor)역할을 하므로

반가웠다.

물은 조용히 머무르면서

고요(silence)와 시(poesie)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 김향안



김향안 여사의 본명은 변동림이다. 소설가 이상과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상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1944년 김환기와 혼인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다. 김환기 선생님은 당시 딸아이가 셋이나 둔 무명 화가였다. 그녀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름까지 바꿔가며 재혼했다. ‘사랑은 믿음이고,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라고 말했다. 1955년 파리 소르본느와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 평론을 공부했고 김환기도 아내를 따라 파리에 갔고, 두 사람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살았다. 수향 산방 내부에 김향안여사의 글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은 수화의 영혼하고 같이 미술관을 지킬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수화의 영혼이 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시리즈도 있었다. 환기 선생님이 뉴욕시절에 완성한 화풍이라고 한다.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화가는 ‘눈 있는 자는 와서 볼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처럼 지금 우리는 그림으로 선생님을 만난다. 예술을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영원한 세계같다. 그의 푸른 빛 화면 앞에 서면 우주가 보이기도 하고 깊은 강물이 보이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생의 물결이 보이기도 한다. 한참을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미 나는 그림을 보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미술관을 나오니 돌풍이 불고 빗줄기가 세찼다. 바람에 도로명 표시판이 떨어졌다. 비가 너무 세차서 이상문학관 처마에서 잠시 서 있다가 버스를 타고 정동으로 갔다. 정동에는 정동성당이 아주 멋있다. 그날은 덕수궁 뷰를 보려고 전망대로 갔다. 서울 시청 서소문 청사 13층에 있는데 덕수궁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문을 닫았다. 돌담길에는 바자회가 한창이었다. 비가 그치고 바닥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겼다. 커피루소 정동에 가서 라떼를 마셨다. 2층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길쭉한 창문으로 보이는 애기손 은행잎이 푸룻푸룻했다. 찻집은 사람들이 내뿜는 운치와 에너지로 충만했다.


#부암동 #환기 미술관#우주#김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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