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et 3

그레트헨의 비극

by 보리별

마지막 일정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파우스트>였다. 딸아이와 걸어서 공연장으로 갔다. 영상실 옆에 의자에 2개만 있는 자리였다. 딸이랑 오붓하게 앉았다. 공연은 훌륭했다. 파우스트는 책방에서 읽었지만 줄거리가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괴테가 시처럼 써놓은 구절구절이 멋졌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기독교 문화가 배경이었고 성경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는데 그 분야는 아는 바도 없고 희극대본으로 쓰인 글은 읽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내 상상력이나 문해력이 문제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우스트이야기는 괴테 시절 독일에 떠도는 민담이었는데 괴테가 걸작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괴테는 1749년에 태어나서 1832년에 돌아가셨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유명하다. 독일 문학을 유럽전면에 등장시킨 문필가이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운영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재정 위기에 처한 공화국을 살리기 위해 파격적인 화폐발행 안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모든 것을 공부한 대학자 파우스트는 인생의 허무에 괴로워하는데(아마도 남성 갱년기...) 하느님과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내기를 한다. 악마는 인간을 믿지 않았고 하느님은 인간을 믿었다.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접근해서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유혹하고 파우스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했던 늙은 파우스트는 다시 젊어진다. 청년으로 돌아간 그가 무얼 할까?

매일 도서관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는 젊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레테헨과 사랑에 빠진다. 얼마나 좋았겠나... 하지만 그레테헨은 '사랑' 때문에 오빠도, 어머니도 잃게 된다. 미쳐버린 그녀는 태어난 아이를 죽여버린다.


이렇게 처절한 비극이 따로 있을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남자가 겪는 최고 비극이라면 <파우스트>는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최고 비극 같다. 아리아는 높고 아름답게 울려 퍼졌지만 그 처참함을 감출 수 없었다. 3시간 동안 손에 땀을 쥐고 극에 빠져들었다.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 해가 지고 밤이 왔다. 서울역으로 갔다. 밥집은 다 마감이었다. 나는 꼬마김밥을, 딸은 주먹밥을 사서 역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시간이 되어 나는 기차를 타러 가고 아이는 집으로 갔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그레테헨을 생각했다. 2층 객석에서 보고 들었던 오케스트라 연주와 배우들의 연기를 생각했다. 얼굴, 목소리, 몸짓에서 인간이 만나는 사건들을 보았다. 전지적 시점은 객석에서 연극을 보듯 나를 조망하는 시점이 아닐까...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인생에는 비극이 많을까... 희극이 많을까... 내가 그레테헨이라면 어쩌나...라는 생각들이 떠다녔다.


그러다 깜짝 놀란다.

연극을 보는 동안 한 번도 딴생각을 하지 않았다.


'쟤가 마음에 안 들어... 그 일은 어떻게 하지... 옛날에 그놈은 나빴던 거 같아... '

이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레테헨의 비극을 보면서


'아...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


라는 유치한 생각을 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는 수준이 불편하지만 그레테헨은 가상의 인물이라서 덜 미안했다.


'아... 이게 카타르시스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함께 모여서 연극을 보았다고 한다. '함께'가 중요하다. 혼자서는 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초는 언덕 위에서 적들이 쳐들어오나 지켰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동선에 따라 눈동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런 눈 움직임은 사람의 편도체를 안정화시킨다고 한다. 그렇게 비극에 빠져 들다가 연극이 끝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갔을 거다. 잠자리에 들면서 지금 내 삶이 나쁘지 않다는 기분도 들었을 거다.


악마가 파우스트와 내기한 문장은


"멈추어라...... ** *****"


입니다. 궁금하시지요?


#괴테#파우스트#그레트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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