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520
요가원에서 초능력자 언니가 물었다. 그 언니는 마라톤 서브 4를 달성한 위대한(?) 분이다. 서브 4를 해냈다는 말을 듣고 내 입에서 '우와! 초능력자닷!'라는 말이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일반인이 풀코스를 4시간 안에 뛰는 건 몹시 어려운데, 게다가 우리는 오십 대 중반을 넘은 여인들이다. 여인이라고 말하기도 약간 애매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55세에 할머니가 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그 시절에는 당연했다. 입성도 그냥 응팔(응답하라 1988) 엄마들 차림이었다. 돈 아깝다고 빠짝 구운 뽀글 머리 파마에 바지는 알록달록 몸빼바지, 신발은 뒷베란다에서 신는 세탁화 비슷한 걸 신고 다니셨다. 몸빼 바지는 절묘한 옷이다. 일할 때 편하고 낮잠 잘 때도 편하다. 최고 기능을 자랑할 때는 동네 엄마들이랑 장판 위에 푸른빛 군용 담요를 깔고 화투치기하는 순간이었다. 그 다양한 기능성을 따라올 바지가 없었다. 한 가지 흠은 완전 할머니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곱게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몸빼 바지 입는 걸 질색하셨지만 엄마는 '거침없이 하이킥'인 스타일이라서 당신 마음대로 하셨다.
나는 출생 직후부터 계속 몸이 약했다. 아버지는 닭이 알을 놓을 때도 초란은 작다면서 안타까워하셨다. 물론 그 안타까움은 70년대 시절에 맞게 초란 같은 딸이 기침을 하거나 아프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화를 내셨다. 몸이 아프면 아버지가 또 화를 낼까 무서웠다.
요가원 언니의 질문은 이랬다.
"얼마 뛰는데?"
"9분 50초요."
"에엥, 할머니가 뛰어도 그것보다는... 기록 잘못 알고 있는 거 아이가?"
"아니요, 짬짬이 8분이나 7분으로 뛰기도 해요."
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닌데, 아닐 건데'라고 중얼거렸다. 언니는 이번 대회에서 520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우리가 '520, 520이라니'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누워서 몸을 풀던 옆자리 동생이 '벤츠 520인가요?'라고 거들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