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et 1

첫번째 이야기 - 수련

by 보리별



4월 13일, 서울 다녀왔다. 동대구역에서 아침 7시 29분 기차를 탔고 저녁 9시 38분 기차로 내려왔다.

영등포역에 내려서 ‘더 현대 백화점’을 가려고 길을 건넜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비처럼 성긴 눈이 날렸다. 구멍이 촘촘히 뚫린 운동화 안에 맨발이었다. 차고 눅진한 습기가 발에 닿았다. 88번을 탔다. 좀 이상했다. 기사님께 물어보니 건너편에서 타라고 하신다. 카드로 환승 태그를 하고(서울은 하차 태그 하지 않으면 요금이 부과된다) 길을 건넜다. 다시 88번이 오고 있었다. 다른 번호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너무 추웠다. 현대 백화점에 내렸다.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바닥으로 꽂혔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백화점은 아직 개점 전이었다. 사람들이 비를 피해 바깥문과 중문 사이에 모여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백화점까지는 5m였는데 겨울처럼 차갑고 태풍처럼 휘감기는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휘청거리며 겨우 걸어갔다. 조금 뒤 딸아이(딸은 서울에 살고 있다)와 만났다.

모네 수련 전시는 아주 좋았다. 그날 전시 제목은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빛, 바다를 건너다’였다. 모네는 1840년에 태어나 평생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작업하다가 1926년 하늘로 가셨다. 이날 전시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싸이즈의 '수련' 작품은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새벽 기차도 빗줄기도 문제 되지 않았다. 수련은 조화롭고 정다웠다.

모네는 1890년 이후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을 그리는 연작작업을 많이 했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지은 후 주로 정원을 소재로 그렸다. 작가로 성공하고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1908년부터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백내장에 걸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그 시절 수술이 어려운 힘든 병이었고 실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죽기 1년 전인 1925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점점 시력이 나빠진 탓에 말년의 그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정도였다. 백내장이 심해진 1910년 후반 이후 수련 그림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수많은 선의 모임으로만 보인다. 안과 선생님들은 모네의 말년 수련에서 보이는 붉은 색감이 전형적인 백내장 환자의 증세라고 말한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린 모네의 말기 회화가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수련 연작은 전 세계 각 미술관 소장품과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250점 정도 있다고 한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 <이건희 컬렉션>에서 기증한 수련 작품 한 점이 있다.

놀랍게도 모네는 백내장을 앓던 시기에 <수련 대작>을 선보였다. 예술가의 마지막 열정이 아닐까... 말년 대작 <수련>은 끝없는 화면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시도한 작품이라고 한다. 60세를 앞두고 시작된 도전이었다. 나이를 넘어 실명 되어가는 눈으로, 꺼지지 않는 창작 의욕으로 모든 것이 이어진 화면을 완성했다고 한다. 1925년 오랑주리 미술관에 2*8m 길이의 연작 벽화가 걸렸다. 벽화가 설치된 타원형 방에서 화가 앙드레 마송은 "인상주의의 시스티나 성당"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샤갈은 모네를 향해서 "우리 시대의 미켈란젤로"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2015년 오랑주리 미술관에 갔었다. <수련>은 그 자리에 90년 정도 있었다. 모네는 세계대전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길쭉한 방 한가운데는 등받이 없는 의자가 길게 있었다. 양쪽 벽에는 수련이 끝없이 펼쳐졌다. 한쪽을 보다가 등을 돌려 다시 반대쪽을 봤다. 물과 수련이 납작하게 펼쳐졌다. 입체적이거나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사진처럼 그리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보였다. 오직 물과 수련만이 있었고 ‘나’는 조금씩 옅어져 갔다. 사람들은 앉아서 수련을 보고 일어서서도 보고 돌아앉아서도 ‘수련’을 느꼈다.

수련은 연못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모네의 수련 앞에 길게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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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함께 미국 인상주의 작품들이 있었다. 눈 쌓인 그림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날 전시된 수련은 미국의 우스터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었다. 우스터미술관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 있는 주립미술관이다. 소장품이 3만 8천 점이라고 한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크다, 눈 풍경화가 인상적이었다. 유럽 인상주의 작품 중 눈 풍경은 없었다. 아마도 파리에는 눈이 쌓이지 않을 거다.

미국 인상주의에는 미국이 있었다. 화풍은 비슷했지만 작가들은 다른 대상을 보고 자신의 ‘인상’을 창조했다. 나에게 처음 다가온 인상주의 작품은 모네가 그린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여인 그림이었다. 바람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휘감았고 구름도 흩었다. 볕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세차 보였다. 그림 제목은 ‘양산을 쓴 여인’이었다. 그 그림은 내게 훅 다가왔다. 빈틈을 주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 구름과 사람과 양산은 강한 빛 아래 형체가 살짝 뭉개졌다. 선명하게 드러난 건 풀더미뿐이었다. 그 여인을 만나고 난 날 밤에 그녀가 자꾸 생각났다. 그 뒤에 서 있는 소년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림 안에서서 불어대는 바람은 내 마음도 제멋대로 휘젓고 있었다. 그림의 모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와 그의 아들 장이라고 했다.

그날 2025년 봄 55세의 ‘나’는 서울에서 붉은 스카프가 살짝 흔들리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옆 선은 날렵하고 기운차 보였다. 상체도 곧고 단단했다. 20대에 만나 양산여인은 내 젊은 날이었고 오늘 만난 그녀는 조금은 단단해진 ‘나’였다.


#모네#가족#지베르니#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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