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다녀왔다. 2달 하고 10일 만이었다. 미용사들이 싫어하는 고객이다. 파머는 하지 않고 커트만 하는데 최대한 미룬다. '너무 나 편한 데로 사는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깔끔해야 좋은 건데...
전에 다니는 A미용실은 30대 젊은 새댁 원장이었다. 솜씨가 좋고 미인이었다. 단발 커트를 하고 서너 달이 지나도 양쪽 길이가 다르지 않았다. 머리 이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만사가 심드렁해지는 갱년기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머리를 더 짧게 '확' 잘라 달라고 했다. 원장은 단호하게'no'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장은 자신의 작품, 즉 머리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다. 머리카락이 길면 여성스럽게 보이고 이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귀찮았다. 6개월 정도 원장님의 방침에 동의하다가 슬그머니 다른 미장원으로 갔다. 나는 배신자인가 보다.
새로 간 미용실에서는 기선 제압을 해야 짧게 잘라줄 것 같았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나 호락호락하지 않아!'라는 표정으로 "아주 짧게 잘라 주세요!"라고 말했다. B원장님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예! 알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군인처럼 말했다. 커트 속도도 아주 빨라서 20분에 끝났다. 가위질도 성격처럼 서글서글했다. '사사삭, 사삭' 하면 끝나 있었다.
4번 정도 커트하러 간 것 같다. 나이는 40대 중반이었고 싱글인지 기혼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날은 사장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니, 어떤 손님이 말이에요... "
손님이 자리에 앉더니 '이 머리 청담동에서 커트했어요!! 그러니까 파마만 해주세욧!'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담동에서 커트한 머리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었나 보다. 영업장에서 주인장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하는 문장이다. 만약 나라면 소심하게 '커트 한지 얼마 안 됐으니 오늘은 파머만 할게요~~'라고 눈치 보면서 말할 텐데 그 손님은 자기주장이 대찬 사람이었나 보다.
B원장은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머리를 만지면서 '혹시 이 머리 프*****미용실에서 하지 않았나요?'라며 슬쩍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손님은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 어뜨케 아셨어욧??'라며 꼬리를 사알짝 내렸다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동네 미용실에서 두 여자가 배를 잡고 웃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사장님, 소재가 너무 좋은데 글 한 번 써보세요.'라고 권했다. 요즘 보는 사람마다 글 쓰자고 권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힘들어서 혼자 하기 억울한가?
사장님이 글은 못 쓴다고 했다. 이 소재를 글감으로 써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 했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님은 서울세미나 간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주었다. 일본에서 날아온 선생님 세미나였는데 그 선생님은 커트를 30분 안에 하라고 했다고 한다. B원장의 빠른 손을 칭찬했다고 한다. 청담동 쪽 미용실은 커트시간이 60분에서 90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비싼가?
물개 박수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경청이 마음에 들었는지 B원장은 에피소드 하나 더 이야기해 주었다. 10여 년 전에 안성에 있는 지인 미용실에 스텝으로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 손님이 원장을 보더니 '촌에서 오셨나 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촌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아주 불편한 대사였다. 초면에 이런 문장을 날리는 이유는 뭘까? B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고... 코스트코 있는 데서 왔어요~~~"
그 시절 안성은 코스트코가 없었고 대구에는 있었다. 또 한 번 깔깔깔 웃었다. 안성이나 대구나 뉴욕 가면 시골마을일 텐데 오늘 한 번 해보자는 거지? ㅋㅋㅋ
예전에는 이런 소소한 기싸움에 휘말리면 약이 무척 올랐다. 부들부들 떨면서 밤새 이불킥을 하고 방구석 복수 혈전을 상영했다. 세월은 흐르고 나이도 먹었다. 마음공부도 조금 했다.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에고, 여기 이분이 자기가 누군지 모르시는구먼, 나도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오늘 처음 민났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