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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Jun 28. 2023

정신 차려,,,,

                         p의 일상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리산에 가고 싶어졌다.

 20대 중반 몸이 아파서 백수신세였을 때 선배들이 데리고 가준 지리산종주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옷가지과 물통 하나만 달랑 들고 간 산행은 정말 좋았다. 선배들이 텐트를 다 짊어지고 먹을 것도 다 들고 갔었다.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구나...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돈 없는 젊은 시절에는 큰 일이었다) 올라가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걸을만했다. 지리산은 육산이라서 길이 폭신폭신하고 착한 흙길이었다. 성삼재 이 후로는 경사도 급하지 않다. 딱 한 군데 토끼봉은 제외이다. 그 순간 말고는 걸을 만했다.


성대종주라고 불리고 40km 정도 거리이다. 그걸 하루 만에 끝내는 캡틴들도 있다고 한다. 역시 우리는 배달의 민족 맞는구나... 30여 년 전 텐트를 치고 샘물을 받아서 밥 해 먹고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래, 늦기 전에 한 번 가는 거야!!!


남편에게 휴가 낼 수 있는 날에 지리산 대피소를 예약해 달라고 했다. 그는 예약을 하고 그날 아침에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동봉을 한 번 가야지... 동봉은 젊은 시절 가끔 다니던 산이었고 5,6년 전 여름에 올랐을 때 별로 힘들지 않았다. 차가 없으니 교통편을 검색해 본다. 웅.. 웅... 수태골까지 걸어가기 힘드니 동화사 지구에서 바로 올라가라고 남편이 말해주었다. 야영장 옆에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 오전 9시가 넘어서 집에서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좀 가기 싫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937이 온다.


앗싸!!!


동대구역 다음 정류장에 내렸다. 왠지 앞쪽으로 직진해야 할 것 같아서 파티마병원방향으로 걸었다. 태양은 뜨겁게 이글거렸다. 동대구역 앞은 신축 고층아파트가 생겨서 낯설고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언제 이렇게 변했냐...


좀 걸어가다가 중년 남성분에게 급행 1번은 어디서 타냐고 물었다.

저쪽 끝까지 가라고 말해주신다....


저어 쪽 끝은 동구청 앞이었다.(20분 넘게 걸었다)


힘 빠진다. 집에 갈까...


버스정류장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편의점커피를 홀짝이면서 마음을 눌렀다.


덥구나... 이열치열... 핫아메리카노... 아이스로 사 올걸... 


동화사 입구다. 왠지 동화사종점 전에 내려야 될 것 같아서 내렸다.


ㅇ.ㅇ,ㅇ.ㅇ, 많이 머네,,,, 땡볕이네,,,,

이쯤이면 야영장이 나와야 되는데,,,


한 번 길을 헤맨 뇌는 또 헤매고 나는 절대 폰을 꺼내 지도를 보지 않는 스똬일,,,(이래서 혼자 다님,,, 깊은 뜻 없음...)


식당 앞에서 주차관리 하던 아저씨에게 염불암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동화사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질문이 틀렸다. 야영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요라고 물어야 되는데...


왠지 돈 주고 동화사 안으로 가기 싫어져서 무작정 직감으로 야영장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대책 없구나!!!). 더웠다. 걷다 보니 팔공산 온천호텔이 보였다. 아... 수태골 가자... 직감은 무슨...


수태골 초입에 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 털썩 앉았다. 벌써 배가 고팠다. 싸들고 간 살구쨈을 바른 빵을 우걱 우걱 우 격 먹고 커피도 먹었다. 발을 담그면 안 되지만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발도 담그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그려, 역시 수태골이야 ,,, 이 물 좀 봐,,, 음이온 대폭발이잖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 가운데 바위에서, 수태골폭포 앞에서 사람들이 여름산을 즐기고 있었다. 몇 년 사이 나무는 더 울창해졌고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물소리는 우렁찼다.


쉬엄쉬엄 천천히 올라갔다.


하산할 때는 염불암으로 내려왔다. 염불암 가는 길은 처음이었는데 고즈넉하고 깊숙한 산세에 마음을 뺏겼다. 다시 오고 싶은 길, 꿈에서 만나고 싶은 길이었다.


내려오니 발바닥에 불이 난다. 생각해 보니 많이 걸었다. 땡볕에서... 10km 넘었잖아...




그래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나는 집에 와서 맥주도 마셔버렸다. 


술을 먹으면 안 되는데 지금 무릎이 부었을 텐데,,,


맥주를 양껏(그래봐야... 500CC) 먹고 뻗어서 자버렸다.


그 결과 아직도 무릎이 아프다. 산행에서 돌아오면 얼음찜질을 해야 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네,,, 마사지도 하지 않고.... 이런 이런!!!!


쫌 대책이 없네,,, 생각을 좀 하고 지리산을 가던지,,, 생각을 좀 하고 동봉을 가던지,,, 생각이 있으면 맥주 말고 얼음찜질을 했어야지,,,


그래, 그래,,, 무릎이 주인 잘못 만나서,,,


이래서 J(MBTI의 한 유형)들이 P를 보면 빡치는가,,,


모르겠다.... 이러케 생긴 걸,,, 어뜨케,,,,


(무릎이 일주일 째 아프다. 지리산 대피소 취소해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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