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별 Jul 07. 2023

무릎과 토네이도 2  

   마음에서! 일어나는, 토네이도.

'트위스트'라고 오래전에 본 영화가 있다.


무릎 통증으로 촉발된 화가 격노-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는 뿌리가 아아주 깊고 견고한 화, 어릴 적 경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로 번져가 버렸는데,,,

문득 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찾아보았다.

놀라운 세상이지,

1996년에 개봉했더라,

이 인간과 연애할 때다. 같이 본 것 같다. 


아,,, 왜 그랬어,,,,


태풍과 토네이도는 완전 다른 것이다. 미국지역에 불어닥치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인데 위력은 태풍과 맞먹는다. 굉음을 일으키면서 모래폭풍을 몰고 온다.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집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장면은 공포그 자체였다. 경보가 울리면 모든 것을 멈추고 바로 바아로,,, 지하실로 대피하고 지하실 입구를 닫아버려야 살 수 있었다.


원인도 알 수 없고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마음에 후두두둑,,,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세포가 흔들린다. 


마음이 일으키는 착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음은 몸의 감각을 언어로 재창조하는 것뿐이다.

최초의 감각은 몸이 느낀다.


갑자기 팔뚝이 서늘해지고 약간 땀구멍이 긴장된다. 자세히 돋보기로 보면 팔뚝의 솜털이 빳빳이 곧두섰으리라. 목구멍이 콱 막힌듯하다. 퍽퍽한 계란 노른자에 들어간 것처럼, 심장은 갑자기 나대기 시작한다. 혈압이 조금 오른다. 어깨와 목이 뻣뻣해진다. 뒤통수가 서서히 굳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뇌가 감지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지금 저 인간이,,,

그때도 그러더니만,,,

저저번에도 그러더니만,,,


그렇지만 동방예의지국의 유교걸로 자란 나는 착한 여자 아닌가....


싫다... 싫어... 유교걸인 게 싫다...


예의 바르고 겸손한 얼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고,,, 그럴 수도 있지 


못 본 척, 아닌 척,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집안일을 하고 잠을 자고 일상을 잘 단속한다.


그런데 말이야,,,

가끔 미친다고...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아주 아아주 불분명하다. 






이번 토네이도는 강력해서 전전두엽이 편도체에게 져버렸다. 뇌를 통과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으로 마구마구 나와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으앙.....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누구 때문에 아픈데,,,


나는 미친 여자처럼 목구멍에서 쓰레기를 꾸역꾸역 내보냈다. 그때 네가 이랬고 그때 아버님이 이랬고 그때 어머님이 이랬고,,,, 가슴에 들어있던 말들이 나왔다. 너랑 같이 한 시간들이 너무나 싫었다고 토해내었다. 

몸져누웠다. 울고 불고 원망하는 일은 힘이 많이 들었다. 괴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침대에 누워 훌쩍인다.

갑자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


일주일 넘게 무기력감, 자책감에 시달리면서 무릎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통증도 더 심해졌다.


강아지도 조용하다. 보호자가 침울하면 이놈들은 더 슬퍼한다. 아이랑 똑같다. 털도 깎았고 비가 와서 산책도 잘 가지 못했다. 진드기에 물려서 마음이 짠했다.



몸을 일으켜 몽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오후 5시였다. 비가 많이 온 강변은 정글처럼 물풀이 무성했다. 그것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푸르르고 씩씩했다. 부리가 긴 새들도 조용히 물고기사냥을 하고 있었다. 지친 뇌는 그것을 멍하게 다른 세상에 온 듯이 쳐다 보았다.


몽이는 오랜만의 산책길을 졸랑졸랑 걸었다.

궁뎅이를 비딱이면서 걸었다. 시원하게 오줌을 누고 똥을 눈다. 세 번이나,


그러는데,

갑자기, 그냥 갑자기


지금 이대로 괜찮다,,,

그래,,, 지리산 못 가면 어때,,,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토네이도 속도가 반으로 꺾였다.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한다. 습기로 가득 찬 바닥은 어항 속 같았다. 만들어 놓은 EM을 희석해서 바닥에 뿌린다. 집에 날파리가 자꾸 생긴다. 빈 통에 식초를 넣고 날파리트랩을 만든다. 쓰레기통을 닦는다. 쭈그리고 앉아서 공손하게 베란다바닥도 닦는다.


친구전화가 울린다. 친구는 지리산을 계획한 내게 등산모자를 빌려주고 비닐비옷과 팔토시와 등산화보호덮개를 선물해 주었다. 그녀에게 칭얼거렸다.


나 : 나 지리산 못 가,,,


친구 : 동동주 좀 먹.었.다.고, 그! 것! 도! 무릎이라고 갖다 버려라!...


나 : 으헝,,,, 그러게,,,  버리고 오면 니꺼 줘,,, 니꺼 좋더라...


친구 : 으이구...


나 : 비닐 우비랑 팔토시도 다시 줄까,,,?


친구 : 그냥 뒀다가 다음에 써,,,


칭얼거렸다. 그녀도 몽골트레킹 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주었다.






토네이도는 지나갔다. 몽이가 바람을 줄어주었고 친구가 멈추게 해 주었다.


누가 일으켰을까...?


내가 일으켰다.


그날 무릎을 보면서 마음의 소리는 욕을 시작했다.


이런,,, 젠장 또 아프잖아...

시작이다.

그렇게 운동했는데,,, 이 바보 멍충아... 이것도 몸이라고,,,


이게 다 00때문이다.

그 때 그 일만 하지 않았어도..


너 때문이얏, 이 썩을 인간아...



이렇게 시작한 마음의 소리는 자꾸자꾸 커져서 머릿속은 뜨거워지고 심장은 벌떡거리기 시작했다. 시작된 분노와 원망은 폭발음을 내면서 커졌고 그것들은 나를 점령해 버렸다. 화 에너지는 온몸 혈관 구석구석까지 타고 들어가 맹렬하게 열기를 뿜어냈다. 근육은 긴장으로 굳어버리고 혈관벽은 온통 스크래치가 나버렸다.


만약에 말이야,,,


그날 무릎을 보면서,


통증이 시작되네,,, 왜 이럴까,,, 원인을 한 번

생.............................................

각......................................................................................

해보자...................................................................................................


이번 지리산여행은

미...............................................

루....................................................................................

어야겠다....................................................

아쉽지만...................................................................


이렇게 생각했으면 나의 일주일은 어땠을까,

세찬 강풍정도로 끝났을까?







아무도 모르게(남편 제외) 끝났다고 괜찮은 걸까,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좋은 사람 되기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 차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