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에 태풍이 지나갔다. 비가 많이 왔다. 그런데 수요일 하늘은 잔인하게 화창해졌다. 짐을 꾸리고 몽이 밥은 자동 급식기에 넣고 은해사로 출발했다. 몽이를 두고 가서 마음이 안 좋다. 집 앞에서 시내버스 840번을 탔다. 버스 안이 따뜻하다. 하양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와촌 1버스를 탄다. 너른 들판이 어여쁘다. 버스 타고 외곽으로 나왔을 뿐인데 갑자기 다른시간에 툭 떨어진 것 같다. 가을이 느껴진다. 햇살은 여름과는 다르게 온기를 품고 있다. 몸이 나른하게 퍼지고 마음도 살풋 풀어진다.
길가에 있는 나뭇잎은 쨍한 햇볕 아래 보석처럼 반짝인다. 나뭇잎 아래로 작은 그림자 그리고 그 아래로 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그것들은 나뭇잎을 더 돋보이게 한다. 바람 따라 나뭇잎들은 자기 배를 뒤집는다. 그것이 반짝이는 모습이 참 이뿌다. 나는 나뭇잎의 뒷면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뭇잎의 뒷면은 초록이나 짙은 남색 빛이 아니다. 약간 톤이 가라앉은 연두와 초록을 섞은 올리브 빛이다. 그 색들은 채도는 낮은데 햇볕을 받으면 부서질 듯 유리처럼 반짝인다.
은해사는 물이 많고 숲이 울창하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가방을 들고 템플스테이관까지 걸어가니 땀이 난다. 템플스테이 숙소을 따로 지어놓았다. 대웅전 뒤편으로 터를 넓게 닦아서 2층짜리 건물을 올려놓았다. 방을 배정받고 한숨 잔다. 계곡물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그 소리는 참 듣기가 좋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이라서 아무도 없다. 넓은 건물에 딸아이와 둘이 있다. 약간 무섭고 조금 편안하다.
오후 5시 저녁예불을 듣는다. 템플 팀장님이 동행해 주신다. 마치고 저녁 6시에 저녁을 먹는다. 정갈한 절밥을 먹는다. 옆에 스님들도 같이 드신다. 은해사는 스님들과 식당에서 공양을 함께 한다. 조금 긴장되지만 식탁은 분리되어 있고 구역도 나누어져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먹어보려고 한다. 맛있다.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엎드려 책을 읽다가 밖을 나와 하늘을 보니 달이 보름달이 되어간다. 달이 시골길 가로등처럼 밝다. 환하다. 아버지가 밤낚시를 다녀오시면 '오늘은 보름이라서 밝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린 마음에 달이 뭐 그리 밝을까 생각했다. 왠걸, 산속 보름달은 광채가 대단하다. 옛사람들이 달빛에 책을 읽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일찍 잠이 든다. 밤 늦게 뭔가를 하는 딸아이도 엄마 왜 자꾸 잠이 오지 하면서 일찍 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을 걷는다. 북두칠성이 보이고 유성이 하나 떨어진다. 앞쪽 대웅전에서 목탁소리, 범종소리가 들린다. 마당을 30분 걷는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내 마음에는 고요함이 일어난다. 새벽은 선물을 많이 준다. 딸아이는 이쁘게 잘 잔다.
아침에는 스님께서 공양간까지 동행해 주신다. 감사히 먹고 암자로 산책 간다.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내린다. 모래 위에 맑게 흐르는 물을 보고 딸아이랑 동시에 감탄한다. 좋은 것은 이심전심이다. 길을 가다 보니 나무가 꺾여 있다. 전봇대도 부러져있다. 태풍이 어마하게 힘이 세다.
백흥암은 얼마 전 안거해제했다고 한다. 일반 대중은 못 들어가는데 템플 참가자라서 보여주신다. 운부암이랑 절집 구조가 비슷하다. 극락전은 아담하지만 당당하다. 지붕의 양쪽 끝자락은 하늘에 우아한 곡선을 그려놓았다. 양쪽 다른 가람과 슬쩍 맞대어 있다. 스님이 자물쇠를 끌러서 극락전을 열어주신다. 극락전은 1643년 중건했다고 한다. 이름이 왜 극락전인가... 절 안에는 보물인 그림이 있다.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의 조각도 보물이라 한다. 들어오기 어려운 곳에 딸아이랑 앉는다. 오랜만에 108배를 하고 명상도 한다. 마음이 시원해한다.
극락전과 진영각, 심검당 모두 단청을 하지 않았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절집은 나무의 결이 그대로 보인다. 세월의 시간도 잘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단청이 붉은 절보다 마음이 느긋해진다. 외갓집 기억이 지나간다. 스님이 방문을 여닫고 청소하신다. 극락전 왼쪽으로 10여 m 떨어진 곳에 영산전과 산신각이 나란히 있다. 참배를 하고 절집이 너무 이뻐서 발길을 못 떼고 그 사이에 우두커니 서 본다.
처마선이 하늘에 선을 그은 듯 그려져있다. 그림처럼 아름답다.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그 시절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에필로그
암자 밖에서 기다릴 때 담장 밖을 걸었다. 흰색 봉숭아가 보이길래 씨방을 몇 개 따왔다. 극락전 옆 채송화씨도 2줄기 꺾어왔다. 방에 와서 쏟아놓고 혼자 놀란다. 왜 이런 거야....
` 공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