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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Aug 05. 2023

#54 고통의 비밀
     

통증과 뇌가소성


 통증은 인간의 전체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통증을 줄이고 뇌가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면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을 다룰 필요가 있다.
"만성 통증은 신체만의 문제도 아니고, 뇌만의 문제도 아니다. 모든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전체를 살펴야 한다. 삶 전체를 되찾아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 12장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통증치료의 혁명에서 가슴에 와닿은 이야기이다. 


 나는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렸다. 통증은 나의 일부분이었고 일상적인 감각이었다.

 뭔가 지그시 누르는 듯한 팔다리, 허리 통증이 없는 날이 없었고 병이 재발하면 외부 활동을 접어야 했다. 안전하고 변수가 적은 집안에서 생활했다. 13살에 발병했지만 베체트라는 병명을 알게 된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동생은 만성 변비가 심했는데 복통이 너무 심해 정밀검사를 하다가 병명을 알게 되었다. 스테로이드가 처방되었는데 약은 부작용이 심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붓는데 얼핏 보면 달덩이처럼 좋아 보인다.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생리가 끊어진다. 약을 복용해도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 나의 경우는 관절과 피부궤양으로 동생은 대장 쪽에 발병했다.  


 병명을 모르니 설명할 수도 없고 그냥저냥 몸이 약한가 보다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우울감이 높았던 것도 그 병에 따른 지속된 통증과 학업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살던 중 2013년 한의원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동네 학모의 소개의 소개로 갔다. 원장님은 독특한 치료를 권했다. 식이요법을 시키고 조깅을 하라고 했다. 식이요법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매일 30분 뛸 수 있으면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된다면서 계속 뛰라고 했다. 그 말에 속아서(?) 지금껏 열심히 달린다. 2013년부터 조깅하기 시작했으니 꽤 오래 달렸다. 2019년도에는 10km 마라톤 대회에 3번 참가했다.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헬스도 했다. 

 요가를 다니다 보면 잘 안되서 속상해하고 옆사람과 비교하다가 그만두는 분들도 종종 만난다. 나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운동을 잘해서도 아니고 마음이 여여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1시간 운동하는 내내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옆사람은 쳐다볼 수도 없었고 30분이 넘어가면 산통을 겪는 것 같아서 언제 끝나나 하고 벽시계를 계속 쳐다봤다. 수업을 마치면 '어이쿠, 오늘도 살았구나' 하면서 다리가 확 풀렸다. 빨리 카페라테를 먹으러 갈 생각만 했다. 옆사람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책에서 말하듯 '뇌가 신경 쓰지 않는 잡음'에 불과했다. 뇌가 인지할 영역까지 끌어올릴 수 없었다.


 지금도 빠르고 힘찬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요가나 헬스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하냐고 물으시면 이렇게 답한다. 


  "운동하고 나면 덜 아파요,,, 근육통과 만성 통증은 달라요! 우울감, 분노,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해요."


 그렇게 쌓인 시간은 생활을 바꾸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아침시간에 운동을 하고 될 수 있으면 저녁악속을 잡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다. 스트레스 중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것은 인간관계였다. 그건 운동처럼 노력으로 되는 영역은 아니었다. 


 딱 하나 조절이 안 되는 것은 불안이었다. 다시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무의식 저변에 깔려있었다. 올봄에 운동을 많이 했다. 조금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무릎 통증이 생겼다. 무릎은 민감한 부위이다. 통증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자 대폭발 해버렸다.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통의 비밀>을 만나게 되나니...

 

 '이런 기막힌 타이밍을 보았나...'


열심히 읽었다. 중요한 대목은 타이핑해서 저장해 두었다. 통증과 불안이 함께 찾아올 때 읽어보려고 한다. 부적처럼...




 1. 통증은 시그널이다


뇌 회로가 환경에 변화하고 적응하는 능력, 과거에는 학습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어린 시절에만 신경 가소성이 발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전 생애에 걸쳐 뇌가 대단히 유연하고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피부조직이 통증 신호를 보내면 뇌가 반응한다는 설명은 명시적이든 추정적이든 지난 4세기 동안 지배적인 이론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며 통증에 관한 거짓이 탄생하게 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뇌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만성통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부분 상처가 치유된 후에도 통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암으로 인한 통증이나 통풍,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의 염증성 통증처럼 잘 낫지 않는 조질 손상으로 만성 통증이 나타날 때도 있다.
나는 통증에 대해 나를 위협하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통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아는 병인데 통증의 강도가 높은 병,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병인데 통증이 약한 병이 있다. 신이 당신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엄마가 가끔 들려주는 옛날 옛적 고약한 시어머니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임신한 며느리가 입덧으로 힘들어하면 다 아는 병인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안 죽는다고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참, 고약하지...


'아가... 힘들지... 그렇다.... 근데 그게 시간이 가면 또 괜찮아질 거야... 잠시만 견뎌보자.. 이 밭일은 마쳐야 하니,,, 조금만 같이 해보자'


 이렇게 말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면 어땠을까...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을까... 책에서 말하듯이 감정이 병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이런 말을 타자가 해주지 못하면 누가 나에게 해줄까... 오직 나밖에 없다.


얼마 전 무릎통증이 있었던 날 이렇게 말해야 했었다.


'무릎아... 힘들지... 내가 무리했구나...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재미있게 운동해 보자'


통증에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과도한 무게를 올리지 않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통증에 과거의 기억을 올리지 않아야 했다. 원망이라는 무게도 올리지 않아야 했다. 하나,,,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원망과 과거 기억을 아픈 무릎 위에 올려버렸다. 이게 잔인한 일인 이유는 몸을 더 아프게 하는 일이고 스스로에게 행한 일이라서 그렇다. 


2. 뇌가소성


간단히 말해 뇌는 정보처리 기관이 아니라 미래 예측 기관이다. 우리는 뇌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대신 뇌가 정말 관심 있는 것, 즉, '예측 오류'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류는 입력되는 감각 정보가 뇌가 예측한 것과 다를 때 발생한다. 그 오류가 매우 사소하면 대개 '잡음'으로 취급되어 지각과 관련된 뇌영역에 도달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리는 외부세계에 대한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몸이 치유된 직접적이 결과가 아니라 몸이 치유되고 있거나 통증을 일으키는 자극이 제거되었다고 뇌가 인식하는 과정이다. 
만성통증에 가장 좋은 진통제는 활동적으로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이 과잉 경계심을 낳고, 그 경계심이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움직임을 더욱 회피하는 경향으로 발전하다.


수용전면 치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생각과 통증에 대한 거부 반응을 서서히 줄여준다. 무엇보다 통증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되고, 결과가 좋으며 통증 완화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통증이 줄어든다. 운동과 명상을 하면서 경험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타인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하기는 어려웠다. 친절한 영국인 의사인 저자, 몬티 라이먼은 통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만성통증을 생각해 보았다. 언제 힘들어하는지도 가만히 살펴보았다.  통증은 내가 놓치고 있는 위험을 알려주고 있었다. 몸을 지나치게 사용할 때,  마음이 상처를 입었을 때 알려주고 있었다. 재발한 3번 중 2번은 가까운 이들과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일어났다. 무의식적 억압을 인지시킬 때 뇌가 '통증'이라는 신호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뇌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의식이나 생각은 파편화되어 있지만 전뇌는 언제나 우리를 잘 보호하려고 한다. 과보호를 할 때도 있고 판단 착오를 일으킬 때도 있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급박한 순간, 처음 겪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니까. 어쩌면 통증은 엄마처럼 나를 지켜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들은 언제나 자식을 염려하니까. 


 이제 통증에 귀 기울여보려 한다. 나의 의식이 놓치는 것을 없는지... 혹시 욕심으로 혹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려 한다. 물론 통증에 끌려가서 압도되지 않으려 애써볼 것이다. 그리고 믿어볼 것이다. 뇌가소성을,


"엄마같은 통증아, 고마워. 잘 살펴볼께."



만성 통증을 해결하는 빠르고 쉬운 길은 없다. 치유의 산을 오르는 길은 종종 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르게 이어진다.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가도 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중거가 인내심과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나아가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몸과 뇌에 친절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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