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경험을 계획으로 구현하는 동네계획

by 삶탐구소

앞선 글에서 살펴봤듯이 도시계획과 도시설계는 사용자를 평균화된 존재로 가정할 수밖에 없다.
성별, 나이대별 주민등록인구수처럼 고정된 사용자뿐 아니라 출퇴근 시간대 인구, 상권 유동인구와 같이 변화하는 사용자를 말할 때에도 개개인의 특성은 간략화된 통계 뒤로 밀려난다.


동네는 다른 계획이 가능하다. 동네에서는 한 사람의 하루가 보인다.
언제 어디서 집을 나서고, 어떤 경로를 선택해서 정류장까지 가며, 어디에서 잠시 멈추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어제 걸었던 길을 오늘도 걷고, 자주 가는 가게가 있는 반복적인 경험의 축적.

이 반복성 때문에 동네는 개별 사용자의 경험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최소 단위가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동네를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란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일 이전에, 사용자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동네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네계획도 사람들이 동네에서 이미 하고 있는 행동과 선택을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집을 나서자마자 가장 빠른 길로 역을 향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밝고 익숙한 골목을 택한다. 어떤 사람은 퇴근길에 늘 같은 가게 앞에서 잠시 멈추고, 어떤 사람은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온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네가 제공하는 선택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동네계획이 다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선택의 조건이다.
왜 이 가로를 더 지나가는지, 길가에서 오후에 볕을 쬐는 어르신들은 왜 이 곳을 선택했는지,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어디서 뛰어노는지 등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경험이 더 매끄럽고 풍요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다듬는 작업에 가깝다. 동네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 과정이 가능하다. 관찰하고, 적용해보고, 다시 살펴보는 일이 현실적인 속도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동네를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단위로서 주목한다.
개별 사용자의 경험을 수집할 수 있고, 그 경험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UX디자인과 동네계획을 비교해보자.

UX 디자인

왜 이 버튼을 누르는가

왜 여기서 이탈하는가

왜 이 기능은 계속 쓰는가

동네계획도 마찬가지다.

왜 이 길로만 다니는가

왜 이 공간에는 앉지 않는가

왜 이 가게는 자주 이용되고 오래 머무르는가


UX 디자인이 사용자 행동을 직접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설계하듯 동네계획도 사람들의 삶을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이 공간 속에서 더 잘 드러나도록 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동네계획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진다.

지나가기 쉬운지

머물 수 있는지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이 가능한지


UX디자인과 내가 정의하는 동네계획의 프로세스도 유사하다.

UX디자인 프로세스

1. 사용자 관찰

2. 사용자 여정 파악

3. 문제 정의

4. 프로토타입

5. 테스트와 반복


동네계획

1. 동네 관찰, 라이프스타일 인터뷰

2. 일상 경로·이용 패턴 분석

3. 불편과 단절 지점 정의

4. 공간·운영의 작은 실험

5. 사용–피드백–조정의 반복


내가 정리한 동네계획 프로세스 도식화를 통해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동네계획 프로세스_도식화2.jpg

1. 사용자 정의 [User 정의]

동네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를 정의하는 일이다. 사용자를 뭉뚱그리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기에 동네계획은 단일 페르소나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사용자로 정의한다.

크게는 거주하는 주민과 일하거나 자주 방문하는 관계인구가 되겠고 시간대에 따라 동네에서 활발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다.


2. VoC 수집 [UX리서치]

사용자가 실제로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를 정량 데이터와 정성 데이터로 수집한다.

이 VoC를 어떻게 수집할지도 동네계획의 연구분야 중 하나가 될 계획이다.


3. 동네계획 프로세스 실행 [UX문제 정의 & 컨셉 도출]

데이터와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수집해서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단계다.

얻은 정량, 정성 데이터를 통해 생활 패턴을 해석하고,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인 지점을 발견한다(Pain point 정의),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도출해간다.


4. 동네 단위 솔루션 제안 [UX 솔루션]

이제 솔루션을 제안하는 단계다. 동네디자인워크샵(그룹)이나 라이프스타일 인터뷰(개별)를 통해 동네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도출해서 동네 단위의 공공서비스나 동네계획을 제안한다. 동네계획은 골목 디자인부터 가로 설계, 오픈스페이스 프로그램 제안 등이 될 수 있겠다.


정리하면 동네계획은 동네 사용자(주민)의 경험을 수집하고 분석해 동네서비스와 동네계획으로 구현하는 사용자 경험디자인 기반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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