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나는 왜 대학원을 선택했을까

by 삶탐구소

대학원을 갑자기 선택지에 두고 고민하게 된 나의 상황과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나의 상황

1. 바로 엔지니어링을 들어가기에는 설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다.

2. 하고 싶은 공부는 있지만 이를 어떻게 연구로 연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3. 2년이라는 시간을 공부와 연구에 쓸 수 있을 사람인지 확신이 없다.

4. 당장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들어갈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주어진 조건

1.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원에 다닐 수 있다.

2. 캠퍼스타운 프로젝트에 실무진으로 참여해 내가 경험해보고 싶었던 커뮤니티 기반의 설계와 사업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다.

3. 석사 학위를 마친 뒤에는 내가 원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 지원해볼 수 있다.


나의 고민

1. 나같은 복수전공생은 대학원에 가지 않고 엔지니어링에 들어가기 정말 힘든 걸까?

2. 석사를 마치고 나면 28살인데 정말 그럼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난다.

3. 만약 이런 제안이 없었다면 대학원을 가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준비 없이, 회피처럼 가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대학원에 간 건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잘한 선택이었다. 두 달 가까이 고민하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스스로를 더 믿고 그냥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대학원에서의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지도교수님 덕분이다.


사실 입학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연구실의 첫 제자로 함께해보자는 교수님의 제안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급하게 입학 준비를 마쳤지만, 이후 한 달간 나주에서 공기업 체험형 인턴을 하며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대로 대학원에 간다는 선택이 안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자대 대학원 사이에서의 고민은 도시공학을 전공한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민이지만, 나는 입학 원서를 내고 합격한 뒤에야 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 취업이 안 되니까 회피하는 거 아니야?”

한 번 생긴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인 만큼 가까운 어른들께 묻는 수밖에 없었다. 이모는 내 선택이 노력이나 실패를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엔지니어링 회사나 대기업 건설사는 지금의 나를 뽑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회사는 당장 쓸 수 있는 사람을 뽑고, 그건 잠재력이나 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지금의 나는 ‘도시를 조금 건드려 본 중문과 학생’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시공학 석사로서 일정 수준의 전문성과 자격을 갖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중문과 전공과 외국어 역량 역시 그때가 되면 비로소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제야 ‘전략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선택이 도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도전이 되도록 이 2년을 만들면 된다고. 어떤 2년을 보내느냐는 결국 내가 결정할 문제였다.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 선택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창 고민을 하다가 끝내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한 시점에 친한 친구가 이런 말을 남겨주었다.

어떤 선택이든, 나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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