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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감사'

상대적 감사가 아닌, 절대적 감사 실천하기

by 자기 고용자

오늘부터 5일 정도 알바를 하게 되었다. 알바도 잘 구해지지 않아 불안했는데 아는 동생네 회사에서 급하게 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찌나 감사한지!


좀 전에 사무실 오는 길에 통화 중이던 여성 분이 지나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지 화를 내셨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화상을 심하게 입은 듯 얼굴 전체가 벌겋게 올라와있었다. 왠지 모르게 화를 내는 이유가 아주 작은 일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그러면 안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 나오고 지하철을 타며 오는 길 내내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가 마지막즈음엔 서울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엄마집으로 들어가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는 조만간 혹은 엄마집으로 들어간다면 쓸 일이 많을 것 같아서 당장 팔지는 못 할 것 같고, 당장 지출을 막을 수 있고 거주지와 식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


이 나이에 부모님을 부양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부모님 어깨에 큰 짐을 지게 하는 게 맞나 싶다. 자괴감이 살며시 올라오고 있는데 순간 지나친 여성을 보면서 나름의 위안(?)을 느꼈다. 건강한 모습에 감사하자고. 이런 식의 감사가 감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난' 앞에서 자꾸만 낮아지는 내가 할 수 감사의 정도가 이 수준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겠지.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마음에 다양한 빚들이 무게를 더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내 이력서에 덧붙여진 자기소개서를 좋게 보신 헤드헌터분이었다. 보통은 후보자들 자기소개서를 읽지 않는데, 내건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다고 하셨다. 오랜 기간 동안 적임자를 찾고 있는 회사가 있는데, 실무자를 건너뛰고 그 회사 대표님이 내 이력서를 직접 보신다면 좋아하실 것 같다고 그렇게 가능할지 인사팀에 문의해 보겠다고 하셨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실무자들 선에서 막힌 것 같다.


이번에 연락 주신 이유는 그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도 있는데 거기도 진행해 보겠냐는 것이다. 이 회사도 A to Z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내가 적임자 같다는 것이다. 대체 나의 어떤 부분을 좋게 보셨길래 나도 포기한 이직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해주실까 싶었다. 물론, 그분도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함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감사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누군가 나를 자기소개서만으로 좋게 봐주신 것에 대해.


그래, 사실 감사의 이유야 찾으면 얼만든지 나온다. 굳이 좋지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가 가진 것들만 보고도 감사하고, 또 내 주변 사람들만 보아도 감사하고, 내게 주신 이 날씨와 환경을 보면서도 감사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너는 감사만 회복하면 돼."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때는 그 말이 지독하게 싫었다. 나는 가진 게 없는 게 뭘 감사하라는 건지, 그 말이 폭력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요즈음. 감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부'를 향해 가는 길에선 그렇다.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감사일기'다. 회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감사'다. 감사일기를 쓰기 위해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부단 애를 쓰고 있다. 잘 되던 때는 매일 쓰는 게 되다가, 흐름이 끊기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귀신 같이 유튜브 영상에서 나에게 또 말한다. 감사하라고.


수입 없이 나가는 지출만 있는 요즘. 돈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점점 더 깨닫게 되는 시기. 상황은 점점 더 좋지 않게만 흘러가고 있을 때에도 나는 감사를 외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장밋빛이 오겠지.'가 아니라, 장밋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감사하는 삶을 산다. 그것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오늘도 감사한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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