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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천천히

by 자기 고용자

멈춰버린 것 같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나의 공백기는 10월이 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4월이면 좀 달라지겠지, 5월이면 달라지겠지, 6월이면 뭔가 되겠지, 7월이면 시작할 수 있겠지, 8월이면 뭔가 보이겠지, 9월이면 수입이 생기겠지.... 그렇게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오늘부터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다. 휴일의 개념이 사라진 지는 몇 개월이 되었다.


휴일에도 일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 쉴 때 일하니까 그래도 뭔가 하는 느낌에 위안을 삼게 된다. 이런 자세부터 고쳐야 할 것 같다.


9월 매출은 100만 원 정도. 순이익은 10만 원 남짓.


온라인으로 뭔가 팔린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그런데 나는 다시금 멈춰 서서 가야 할 방향을 점검한다.



2주 전 즘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결혼 후 자신이 직접 거주할 예정이니 재계약은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올초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바로 복귀가 아닌 퇴사를 선택하며 급변하는 시간의 연속으로 지쳐가고 있던 것도 있고, 현재 사는 집이 이제까지 살았던 집 중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이사 갈 의향이 전혀 없었기도 했고, 이사 비용이 주머니 속 어딘가에서도 나오지 못할 상황과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이사일정을 조율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돌아오고 싶어서 몇 년을 벼르고 있다가 온 동네이기도 했고, 몇 년간 청년 버팀목대출을 못 받는 상황에서 대출규제가 살짝 완화되어 간신히 갈아탔던 대출상품이 한 번은 재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버리기 너무 아까운 카드였다.


여러 가지 상황 상, 이사라는 옵션은 내게 전혀 없었다. 집 없는 서러움을 이렇게 또 한 번 왕창 느끼는구나 서러움이 폭발했다. 막막하기도 했다. 지금 대출신청을 하더라도 수입이 없는 상태라 대출이 가능할까? 재갱신은 가능할까? 복비며 이사비는 어디서 마련하지? 지금 사는 집과 비슷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지금 상태에 가장 적합하게 좁혀서 가는 게 낫겠지? 아니면 서울 밖으로 가야 하나? 엄마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차를 팔아야 하나? 별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본격적으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지 이틀째 아침.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2시간 정도 후에 집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어제 부동산에 전화를 너무 많이 돌려서 그중 하나인가 싶은 생각에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 어머니라고 하셨다.


"집 알아보고 계셔요?"

"네, 이제 알아보고 있어요."


아들이 지금 사시는 곳으로 이사 가려고 했는데, 출퇴근이 너무 멀어서 결국 다른 집을 계약했다고 나보곤 여기서 계속 살라고 하신다. 보증금도 똑같이 해서 재계약을 하자고...


이게 너무 반갑고 감사한 일인데, 마냥 기쁜 감정만 들지는 않았다. 자존심(?)을 다 버리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마구 쏟아부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1초 스쳐갔지만 결국 떨떠름함을 65% 정도로 첨가하여 계약날짜를 잡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2주 정도 이사 갈 생각에 참 복잡했었다. 그리고는 '그래, 새 출발한다고 생각하자!'라며 마음을 다잡던 찰나 뭔가 허무한 느낌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내 새 집으로 이사 간다고 여기며 어제 다이소에 가서 수납정리함을 몇 개 사 왔다.


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가구 배치가 하나도 맞지 않아 매일 어수선한 상태로 지냈었는데, 이제는 안 쓰는 물건은 버리고 깔끔하게 살아야겠다 싶어서. 그래야 내 마음도 정돈이 되고, 돈이 들어올 틈도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작년엔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특정한 이유 없이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작년 중반으로 갈 즘부터 '올 한 해가 빨리 지났으면 좋겠다. 빨리 내년이 왔으면 좋겠다.'만 주문처럼 외우며 지냈다. 그런데 올해는 '제발 하루하루가 천천히 좀 갔으면 좋겠다.'라며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빠르기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니! 그 이유가 무얼까 궁금하다. 달라진 것이라곤 '회사 다녔던 나'와 '회사 다니지 않는 나'일뿐인 것 같은데.


빠르게 흐르는 시간만큼 내 마음도 날이 갈수록 조급해졌다. 그래서 브런치도 써보고, 스레드도 해보고, 유튜브도 해보고, 위탁도 해보고, 리셀도 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지금 듣고 있는 비지니스PT에 가서도 "저는 지금 급하다."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진도를 빨리 빼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급한 이유가 대체 뭐예요?"라고 하신다. 나는 내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또다시 물으시는 이유가 뭔지가 더 궁금했다. '어떻게 아직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지?' 하며 그의 전문성에 의구심도 들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없어서 차를 팔기로 했다. 이것은 차를 나의 날개라고 여기는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다. 이것은 내가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음을 의미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력서 넣으라는 제안이 오면 그래도 반갑고 혹시 갈만한 곳이 없을까 몰래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이제는 절단할 때인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


운전할 때마다 내가 핸들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에 자유를 느끼며 '나는(flying)' 느낌을 받곤 했는데. 날개를 빼앗긴 느낌으로 몇 날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전에도 차를 팔고 엄청 후회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때는 엄마의 입김 때문에 결국 차를 팔았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차를 팔아야겠다고 말하는데 엄마는 안 팔았으면 하는 게 더 컸다는 점.


'더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지금 차를 파는 것.'이라고 주문을 외워도 점점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당장 목돈이 생기면 수강료도 내고, 작게 제조도 하고 진짜 내 제품을 팔아볼 수 있지 않을까.


'차까지 팔았는데, 잘 안되면 어쩌지?'란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다 끝까지 가면 그때는 정말 엄마집으로 들어가야지 뭐.'라고 하지만, 그래도 두렵다.


사람의 두려움이 이렇게 큰 것이구나, 그래서 사업을 하는 선배들은 하나 같이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했나 보다 싶다. 두려움이 장악하게 되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해진다고 하던데, 올 한 해 내 상태가 그랬던 것 같다.



이젠 올 한 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를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오늘 봤던 책에서 만약 1년, 3년, 5년 후에 죽는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겠는가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올해, 저는 만족했어요."


갑자기 내년이 기대가 된다. 더 좋은 차를 끌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맛있는 밥을 대접하는 것.


밥 사주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대접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이 길이 내 길임을 인정하고 천천히, 기반부터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몇 주간 다양한 일들이 겹치고 흘러지나 가면서... 회피하고 싶은 상황과 순간들이 많았다 보니 글을 쓰지 못했는데, 오늘 봇물 터지듯 쏟아내 버렸네. ㅎㅎ


결론은.

오늘 하루를 만족한 하루로 보내자!


모두들 즐거운 연휴, 행복한 오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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