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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

by 자기 고용자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11월 마지막주를 향해 가고 있다니. 올 한 해 동안 이 말을 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참 신기하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동일한 시간도 이렇게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다가 분명히 또 오겠지. 벗어나고 싶은 시간이 죽을 것 같이 흐르지 않는 그 시간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에 또 감사해야 하나. 빠르게 흐르다가도 이렇게 '멈칫'하는 순간이 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오늘은 오랜만에 신림에 왔다. 거의 10년 만인가? 이렇게 한낮의 풍경을 본 건 그 정도 된 거 같다. 밤에 남자친구랑 산책하러 들렀던 적은 두세 번 정도 있었는데 오늘은 혼자 왔다. 쓸쓸해지는 가을을 넘어 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한 때 자취한 적 있었던 이 동네. 언니가 외국을 나가는 바람에 언니가 살았던 원룸에 내가 들어왔었다. 그전에는 상가건물의 집주인 할머니 윗집에 나름 분리형이었던 옥탑에 살고 있었던 터라 언니가 살았던 집은 그저 호화로웠다. 마냥 좋았다. 뭔가 육지로 나온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 한 명은 이미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막 결혼을 한 상태였고 다른 한 친구는 소개팅을 하고 와서 두 번째 만남까지 했는데 이 남자가 연락이 없다며 약간의 짜증(?) 섞인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다.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다 같이 횡단보도를 건널 즈음 그 남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엄청 앙탈 부렸었는데, 지금은 그 남자와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살고 있다.


나의 시간만 멈추어버린 것 같다. 다들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는데, 가장 빨리 결혼할 것 같다던 나만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을 찾느라 헤맨다.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꿈만 가득.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나이를 들면서 점차 좁아질 만도 한데...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중학생 때는 노는 언니로 날렸고, 어디서든 빛을 발했다. 덕분에 나는 늘 '언니의 동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려졌었다. 그게 콤플렉스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유행하면서 열등감이 동기가 된다는 그럴듯한 말이 나를 위로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던지.


평생을 '나'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언니의 동생이 아니었어도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였을까?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를 찾지 못해서 끊임없이 방황했을까? 기본적인 태생은 버릴 수 없었겠지만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는 여정에 있지 않았을까? 뭐, 오늘은 시간이 많나 보다. 이런 잡생각 할 시간도 있고 말이다.


아무쪼록 요 근래 가끔씩, 과거에 대한 후회가, 현시점에 대한 불만족이 솟구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막연히 40이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 지금보다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겠지라고 기대하며 지난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딱히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지금을 사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운가 보다.


지금은 그래도 친구들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난 그냥 '멍충이'인가? 그래서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 그때 메꾸지 못한 시간에 대한 벌을 성인이 된 이후로 왕창 받고 있는 건가? 그렇게 앞날이 창창해 보였던 언니도 공무원으로 지내는 걸 보면서 나도 이제는 현실과 타협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닌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불만족이었던가. 여전히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것인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다는 말에 아직도 화가 많이 나는데. 이런 나를 어쩌란 말인가. 남자친구의 사랑이 조금 보일 거 같으면 안정감을 얻다가도 알듯 말듯한 모습이 다시 보이면 불안이 극에 달하는 내가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결국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나'라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또 원망하게 된다. 이 굴레를 떨칠 방법은 한 가지뿐인 것 같다. 내가 잘 나가는 것.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버리지 못했나 보다. 이 꿈을. 이 야망을.


나처럼 야망이 큰 여자를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이루지 못한 시점에는 누구도 거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괜히 속상한 것들이 많은가 보다.

그래도 한껏 내뱉고 나면... 나도 보이겠지. 오늘 내가 걸어야 할 한 걸음이.


다음 달에는 제품을 론칭하고 실제 판매에 들어갈 텐데, 아직 상세페이지 기획도 하지 못한 상태라 불안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이 시간. 나는 나를 어떻게 무엇으로 도울 것인가.


그래도 해내자. 스스로 해내자. 내가 이루었다고 말하자. 내가 해냈다고 말하자. 내가 내 인생을, 내 삶을 책임지자.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기대지 않고, 내가 이루었다고 세상에 말하자. 해내자. 오늘도. 그렇게 해내자. 해내자. 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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