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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오르는 연봉, 무너지는 조직

연봉이 ‘실력’이 아니라 ‘울음 데시벨’로 결정되는 회사는 결국 무너진다

by 유니콘정글

연봉 협상 시즌이 되면 가끔 이런 장면이 벌어진다. 같은 팀, 같은 레벨, 비슷한 성과를 냈는데도 어떤 사람은 연봉이 더 많이 오른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 친구가 요즘 힘들어해서요.”
“퇴사할 것 같아서 붙잡아야 했어요.”
“계속 불만을 이야기하길래….”

어쩌면 선의일 수도 있다. 당장 팀이 흔들리는 걸 막아야 하고, 사람을 잃을 수 없고, 감정도 다독여야 한다.

그런데 이 선의가 반복되면 조직의 룰이 바뀐다. ‘잘한 사람’이 보상받는 조직이 아니라, ‘더 크게 울거나 더 빨리 나가려는 사람’이 보상받는 조직으로.

우리는 이걸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연봉 협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문제는 이 방식이 생각보다 빠르고 치명적으로 조직을 망가뜨린다는 데 있다.


1. 보상이 ‘성과’에서 ‘소음’으로 이동한다

연봉은 원래 조직이 보내는 가장 큰 신호다.

“우리는 이런 기여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런 역할을 더 가치 있게 본다.”

그런데 소음이 신호를 이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금방 학습한다.

성과를 내는 법보다 협상에서 이기는 법을.

문제를 해결하는 법보다 문제를 크게 만드는 법을.

그리고 조용히 결과를 내는 사람은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버텼지?”
“다음엔 나도 목소리를 키워야겠네.”

결국 조직 전체의 에너지가 일에서 협상으로 옮겨간다. 그때부터 성과 문화는 조금씩 말라간다. 조직의 언어가 바뀌기 때문이다.

“어떻게 더 잘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이 받을까?”로.

2. 공정성의 균열은 가장 빠른 이탈 신호다

스타트업은 시스템보다 신뢰로 굴러간다. 규정이 빈틈투성이여도, 성과 측정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은 공정하다”는 믿음으로 버틴다.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 언제냐면,

‘내 옆자리의 연봉이 나보다 높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을 때’다.

사람은 비교를 한다. 하지만 비교보다 더 무서운 건 “설명 불가능함”이다.

“왜 저 사람이 더 받는지 모르겠다”는 감정은
“여기서 더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로 직결된다.

그때부터 조직은 두 부류로 나뉜다.

더 크게 요구하는 사람

조용히 떠나는 사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부류가 회사의 코어인 경우가 많다. 문제를 만들지 않고, 책임을 져주고, 묵묵히 버티던 사람들.


3. 연봉 인플레이션은 적자를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로 만든다

“한 명만 올려준 건데 뭐가 문제야?”
이 말이 가장 위험하다. 스타트업의 인건비는 ‘한 명’이 아니라 ‘기준’으로 움직인다. 어떤 사람에게 예외가 생기면, 그 예외는 곧 기준이 된다. 다음 협상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말한다.

“지난번에 A에게 그 정도 맞춰줬잖아요.”

이때 회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또 예외를 만든다.

예외를 거부하고 갈등을 만든다.

둘 다 비용이다. 예외는 현금 비용이고, 갈등은 조직 비용이다. 게다가 이 갈등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 프로젝트 지연, 내부 정치, 팀 간 불신, 채용 난항 같은 형태로 재무제표 바깥에서 회사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4. “붙잡기 인상”은 가장 비싼 보험이다

퇴사할 것 같아서 올려주는 연봉은 일종의 보험이다.
“지금 잃지 않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 하지만 이 보험은 두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첫째, 떠날 사람은 떠난다.
연봉으로 버티게 하는 건 잠깐이다.

근본 이유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상은 ‘퇴사 시점’을 미루는 비용일 뿐이다.

둘째, 안 떠날 사람까지 떠나게 만든다.
“떠날 것 같은 사람”만 특별 대우받는 걸 본 사람들은 말없이 결론을 낸다.
“그럼 나도 떠날 것처럼 보여야 하는구나.”


5. 스타트업이 지켜야 할 연봉의 원칙

연봉 협상의 현장은 현실적이다. 감정도 있고 긴급함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원칙이 필요하다. 성과 기준은 단단해야 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기여가 어느 정도의 보상으로 연결되는지”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 예외를 만들려면 ‘조직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감정, 불안, 퇴사 시그널이 아니라 역할의 희소성, 시장 벤치마크, 책임 범위 같은 조직이 설명할 수 있는 언어로만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협상은 ‘조용한 실력자’를 보호해야 한다. 대부분의 핵심 인재는 시끄럽지 않다. 그들이 “참아서 손해 본다”는 학습을 하지 않도록 평가와 보상 시스템이 먼저 그들의 기여를 발견해야 한다.


마무리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건 어느 집에서나 통하는 임시방편이다. 하지만 조직에서 그 방식이 반복되면, 떡은 달래는 보상이 아니라 룰을 바꾸는 신호가 된다. “여기서는 울어야 떡을 받는다.” 그 신호가 퍼지는 순간, 성과는 무력해지고 공정은 무너지고 재무는 흔들린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자산은 돈도 기술도 아니고, ‘공정하게 성장한다는 믿음’이다. 연봉을 그 믿음 위에 설계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비전도, 아무리 뛰어난 제품도 사람의 균열 앞에서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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