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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인생이란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스무 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 서문

스무 살. 그땐 세상을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고 위태롭다고 느꼈다. 나는 가난했고 남루했다. 집안의 경제를 맡아야 했던 터라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은 오래 전에 접어야 했다. 내가 햇살이 가득 큰창으로 들어오는 남향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무 살 시절의 어둡고 침침했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서다. 미로처럼 꼬인 길에서 비상구를 찾기 위해 헤매고 안간힘을 쓰다가 스스로 지쳐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야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힘은 절망과 결핍이었다. 어쩌면 희망과 욕망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절망하고 결핍을 느끼며 살지도 모른다. 사람은 스스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무엇을 희망하고 욕망한다는 것은 완성으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내가 마흔 살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까스로 체득한 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평가할 이유나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사람이 위치한 곳에서 입장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깥을 보려고 노력한다. 동굴에 들어앉아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한다. 진실은 바깥에 있으니까.               

내가 만난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들이다. 정면승부.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을 듣고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그들의 심장이 되도록 집중하는 것,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더구나 작가들의 스무 살 인생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정리하면서, 그들이 겪었던 세월들, 아파했던 심장이 내게도 전해져 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야 했다. 내 기억의 필름이 자연스럽게 거꾸로 돌려져서 잊은 줄 알았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까지 토해내야 하는 바람에 앓아 누어야 했다. 누군가가 나를 심연에서 꺼내 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그러나 감사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회복해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은, 내 인생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고 추억하고 사색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마흔 살이 된 지금 인생이 무엇인가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것에 감사하다.   

- <스무 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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