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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꽃이 피듯

베란다에 내놓았던 화초가 바싹 말라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버리기는 아깝고 또 숨이 넘어간 화초를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몰라 나로선 방치한 셈이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화초가 봄볕을 쬐더니 생기가 돋고 노란 꽃 한 송이를 피웠다.

꽃을 피우지 않는다며 화초가 죽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물을 주고 꽃을 피워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화초는 자연의 시간에 따라 말없이 잠자고 있다가 꽃이 피는 시간이 되면 꽃을 피우고 푸른 이파리를 몸 밖으로 뻗는다.

어김없이 봄이 왔다. 계절은 약속이나 한듯 연인처럼 다가왔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라. 타인의 도움을 바라지 마라. 너는 너의 것이란다. 그것이 바로 삶이란다."

- <첫사랑>, 펭귄클래식, 71쪽


사랑에 빠지면 행복하지만 마냥 행복하다고 해서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내 곁에 오지 않으리라는 불안에 휩싸이면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내 곁으로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주문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 사랑이 내 곁에 돌아오지 않으면 상심하겠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내 삶을 살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도 스스로 다가온다.

사랑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있기에 나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죽은줄로만 알았던 화초가 봄이 되어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사랑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았다. 언제 저렇게 꽃이 피었나. 땅에서 솟아오른 생명을 가만히 본다.  내 인생에서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길가에 초라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보듬어 주지 않지만 스스로 꽃을 피운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화초에도 꽃이 피듯이.


 

* 본 글은 <그리고 사랑을 보다>(정윤희 글, 김은기 그림)에 실린 글을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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