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햇살이 유리창을 부드럽게 비추며 도서관 내부를 따뜻하게 감쌌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도서관의 공기도 한층 활기차졌다. 제이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늘은 행복도서관에서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북토크 행사 날이었다.
이 행사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작가, 독립출판 작가, 그리고 특별한 주제를 가진 저자들을 초대해 독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교류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제이의 바람이 담긴 행사였다.
“사서님, 이번 달 북토크 준비는 다 됐나요?”
강철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는 평소처럼 차분한 미소를 지었지만, 말투에는 특유의 신중함이 묻어났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문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마치 부품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와도 그 이유로 헤어졌다. 대기업을 다니는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였지만, 회사 밖에서는 삶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것만 같았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라며 이별을 택했다. 사랑보다 안정이 우선이라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과 연인을 모두 가진 삶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동네책방을 창업했다. 동네책방을 운영하며 지역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작은 출판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그는 비로소 삶이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를 실패한 사람이라 했지만,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고 느꼈다.
제이는 미소를 지으며 리스트를 체크했다.
“대체로 준비는 끝났어요. 좌석 배치도 완료했고, 마이크도 테스트했어요. 그런데 매번 어떤 작가를 초대할지가 고민이에요. 베스트셀러 작가를 부르면 사람이 많이 오지만, 지역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역 작가들이나 독립출판 작가들도 좋은 책을 쓰지만, 기회가 너무 적죠. 행복도서관이 그런 작가들에게 무대를 제공할 수도 있겠네요.”
오늘의 초청 작가는 윤소연이었다. 그녀는 지역에서 독립출판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책을 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 『너와 나의 거리』는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다룬 작품으로, 도서관 북토크에 딱 맞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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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행사 준비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최종 점검을 진행했다. 강연이 진행될 자리에는 원형 테이블을 배치해 참석자들이 서로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작가를 위한 좌석에는 작은 꽃병과 물 한 병을 준비해 두었다.
최윤희 강사도 도착해 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사서님, 질문지를 미리 준비했나요?”
“네,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 두었어요. 하지만 즉흥적인 질문이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좋아요. 북토크는 형식적인 행사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흥미롭잖아요.”
그러나 제이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작가 선정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 단순히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저자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다음 달에는 지역 문학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볼까? 아니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논픽션 작가를 초대할까?’
그때, 도서관 한쪽에서 두 노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작가는 독립출판 작가라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책도 많이 읽나 봐요.”
“요즘 책은 다 베스트셀러 위주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작가를 초대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고요.”
제이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다시 한번 확신을 가졌다. 북토크는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장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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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드디어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도서관의 한쪽 벽면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는 윤소연 작가가 앉아 있었다. 참석자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윤소연입니다.”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말이 시작되자 도서관 안은 조용해졌다. 작가는 책을 쓰게 된 계기부터, 이번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너와 나의 거리』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쓴 책이에요. 인간관계 속에서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는 감정의 변화를 담아보고 싶었어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참석자들은 더 집중했다. 북토크를 들으며 자신만의 경험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한 중년 여성은 옆자리 친구에게 속삭였다.
“이 책을 읽고,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어요.”
또 다른 청년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며 중얼거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감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건가….”
이처럼 북토크는 각자의 일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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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독자들은 작가에게 직접 사인을 받으며 소감을 전했다.
강철은 행사장을 정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이런 삶은 없었겠지.’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날 밤, 도서관은 여전히 따뜻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책이 사람을 연결하고, 이야기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이곳. 내일도 이곳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