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초여름, 행복도서관 앞마당의 이팝나무는 어느새 짙은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봄비 덕분에 잔디는 더욱 싱그러워졌고, 작은 꽃밭에는 금계국과 패랭이꽃이 햇빛을 받아 노랗고 분홍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낮에는 해가 길어지면서 볕이 따가워졌다. 햇살이 건물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릴 때면, 책을 읽던 사람들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커튼을 조금씩 당기곤 했다.
밤이 되자, 낮의 더위가 서서히 가라앉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도서관 마당에는 부드러운 초여름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은은한 향을 퍼뜨렸다. 매미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지만, 밤공기는 한층 깊어졌고, 멀리서 풀벌레들이 작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행복도서관이 주최하는 야간 독서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라면 문을 닫을 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도서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는 도서관 내부에는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책장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창밖에서는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며 초여름 밤의 조용한 고요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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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가 되자, 도서관 1층 홀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조용한 분위기가 아닌,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작가들과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밤에 도서관이 이렇게 개방되니까 새로운 느낌이네요.”
“낮에는 바빠서 오기 어려웠는데, 이런 행사가 있어서 참 좋아요.”
곳곳에서 작은 기대감이 묻어나는 대화가 오갔다.
도서관 한쪽에는 독립출판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책장에는 최근 출간된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놓여 있었고, 작은 탁자 위에는 작가들이 직접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제이는 행사 진행을 점검하며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오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상당히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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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아침부터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서관 운영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필요로 했다. 책 정리, 프로그램 기획, 예산 조정, 이용자 민원 대응…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게다가 이번 행사는 도서관 운영 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녀와 몇몇 사서들은 퇴근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내일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문득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싶어졌다.
일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 나는 책을 읽을 시간도 없구나.’
제이는 행사장 한쪽에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초여름 밤공기가 창문 틈으로 살짝 스며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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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첫 순서는 도서관을 창작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신진 작가들의 이야기였다. 첫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이는 김도윤이라는 젊은 작가였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독립출판을 통해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 저는 카페보다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카페는 시끌벅적해서 집중하기가 어렵고, 집에서는 다른 유혹이 많아서 글을 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도서관은 조용하면서도 창작을 위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책을 보다가 영감을 얻기도 하고, 가끔은 사서님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새로운 시각을 배우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신진 작가로서 가장 힘든 건 독자에게 다가가는 거예요. 출판사 없이 책을 낸다는 건 대단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죠. 마케팅, 유통, 판매까지 작가가 모두 감당해야 하니까요.”
옆에 있던 박수연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않으면 ISBN 등록부터 도서 유통망에 올리는 것까지 전부 작가가 직접 해야 해요. 그래서 독립출판을 하면 자유로울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대형 서점에서는 잘 받아주지도 않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경우에도 홍보가 부족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글을 쓰는 것도 힘든데, 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험난하거든요.”
강철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래서 도서관과 서점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저는 제 서점에서 독립출판 코너를 운영하고 있어요. 도서관에서도 신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오늘처럼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시간을 더 자주 만든다면, 도서관이 책을 창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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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도서관을 둘러보며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쪽에서는 신진 작가들이 직접 만든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했고, 다른 쪽에서는 작은 낭독회가 열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갔지만, 도서관의 분위기는 오히려 더 활기찼다.
제이는 행사장을 둘러보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책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가란 무엇인가』를 펼치자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오늘의 밤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는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독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사서로서 여기에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