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행복도서관의 하루는 평소와 다름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햇살이 길어지면서 도서관 앞마당의 나무들은 한층 짙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이팝나무는 하얀 꽃을 다 떨구고 윤기 나는 초록 잎을 가득 펼쳤으며, 화단에서는 금계국과 패랭이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한 향기를 퍼뜨렸다.
창문을 열어둔 독서 공간에는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들었고, 커튼이 가볍게 흔들렸다. 도서관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그림책을 안고 바닥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오후 4시쯤이 되자 햇살이 서서히 누그러졌고, 도서관 창가 자리에는 차 한 잔을 곁들여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도서관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몇 주간, 특정 책들이 대출 기록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제이는 처음엔 단순한 착오라고 생각했다. 이용자가 반납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책을 도서관 어딘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가져다 놓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한 책들만이 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 사라지는 책 목록
•『1984』(조지 오웰)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동물농장』(조지 오웰)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데미안』(헤르만 헤세)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거나, 개인의 자유와 성장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다룬 책들이다.
“이상하네… 같은 유형의 책들만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건 처음인데.”
제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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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서가 정리를 하던 후배 사서 지민이 다가와 물었다. 제이는 대출 목록을 보며 답했다.
“책들이 자꾸 사라졌다고 들어오는데, 대출 기록이 없어.”
“어? 며칠 전에도 어떤 이용자가 『1984』가 없다고 문의했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원래 자리에 있더라고요.”
제이는 서가를 다시 한번 훑었다.
“그게 한 번이면 우연이겠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건 뭔가 이상해.”
그녀들은 함께 CCTV 기록을 확인해 봤다. 하지만 해당 서가가 CCTV 사각지대라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며칠 동안 제이와 지민은 조심스럽게 책이 사라지는 시간을 추적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책이 사라지는 시간은 주로 저녁 7시 이후,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도서관이 문을 열기 전 아침 9시 이전이다.
“도서관이 닫힌 시간에 책이 돌아온다고?”
제이는 서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책장 뒤쪽에서, 접혀 있는 작은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는가?”
의미심장한 문장이었다.
“이건… 누구의 메시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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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제이는 일부러 서가 근처에서 책을 정리하며 기다렸다. 밤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그리스인 조르바』 를 꺼내더니, 다시 주변을 살폈다.
“혹시, 책을 찾고 계세요?”
제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남자는 순간 움찔하며 책을 가슴에 안았다.
“…아, 저는 그냥…”
그의 얼굴을 보니 대학생 정도로 보였다. 그는 다소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제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괜찮아요. 혹시 이 책들이 계속 사라졌던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전 여기서 몰래 책을 읽어요. 대출하면 집에서 가족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서.”
“가족들이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 부모님은 이런 책 읽는 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냥 공부하는 책만 읽길 바라시거든요. 그래서 도서관에 올 때마다 이 책들을 몰래 가져가서, 도서관 안에서만 읽고 다시 제자리에 둬요.”
제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가 사라지게 한 책들은 모두 인간의 삶과 자유, 사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었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 책을 읽고 싶었지만, 집에 가져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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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조용히 책을 내려다보았다.
“책을 읽고 싶다면, 꼭 이렇게 몰래 읽지 않아도 돼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집에 가져가면 안 되니까요.”
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도서관에는 ‘자유 독서 공간’이 있어요.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죠. 혹시 다음부터는 그곳에서 읽는 게 어때요?”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곳이… 있었어요?”
“그럼요.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에요. 당신이 어떤 책을 읽든, 여기는 그걸 막지 않아요.”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책이 사라지는 미스터리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는 더 이상 책을 몰래 가져가지 않았고, 자유 독서 공간에서 당당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이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도서관은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라는 것을. 창밖으로 초여름 밤공기가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도서관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