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를 읽는 사람들

정윤희 소설

by 정윤희

도서관 창밖으로 햇살이 부드럽게 퍼졌다. 도서관 안은 아직 한산했지만, 제이는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독서 모임을 위해 회의실을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독서 모임의 주제는 ‘금서를 읽는 사람들’이었다. 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한때 금지되었던 책들을 읽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모임이었다. 그녀는 이 모임이 단순히 금서를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왜 검열되었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책을 정리하던 제이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문득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기업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늘 조심하라고 말하던 아버지는 결국 작업 중 기계에 오른쪽 팔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제이의 아버지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었다.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앞장섰고, 동료들과 함께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회사는 그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아버지는 작업 중 사고를 당했고,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보상은 미미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깊은 우울증을 앓았고,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 제이에게 도서관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책 속에서만큼은 현실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서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이 자신을 위로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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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도서관 입구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포스터엔 ‘역사를 통해 금지된 책들’이라는 제목과 함께 여러 권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 『1984』 - 조지 오웰 (전체주의 사회 비판)

-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정치적 풍자)

-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윤리적 논란)

- 『호밀밭의 파수꾼』 - J.D. 샐린저 (청소년 부적절성 논란)

-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전쟁과 사회 문제 다룸)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사회적 불평등 묘사)


포스터를 읽고 있던 강철이 다가왔다.

“이 목록을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왜 어떤 책은 환영받고, 어떤 책은 금지당했을까요?”

제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마도 그 시대의 권력자들이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어서겠죠.”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책을 금지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이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도서관이 이런 책들을 보존하고, 자유롭게 읽을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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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1984』와 『연을 쫓는 아이』를 펼쳐 들었다. 영숙은 오늘의 책을 소개하며 말했다.

“『1984』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빼앗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주인공 윈스턴은 체제에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굴복하게 되죠.”

한 참가자가 조용히 말했다.

“읽으면서 너무 섬뜩했어요. 특히 ‘빅 브라더가 보고 있다’는 문장이 현실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다른 참가자가 덧붙였다.

“언론 조작과 이중사고 개념이 지금의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서 더 무서웠어요. 뉴스에서조차 진실을 믿기 힘든 시대잖아요.”

이어지는 논의에서 『연을 쫓는 아이』도 언급되었다. 영숙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에요. 주인공 아미르는 어린 시절 친구 하산을 배신하고, 성인이 된 후 속죄의 길을 찾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적 현실과 부족 간의 갈등, 전쟁의 참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일부 국가에서 금지되기도 했어요.”

한 참가자가 조용히 말했다.

“읽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특히 하산이 아미르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모습이요.”

강철이 덧붙였다.

“이 책이 금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담긴 폭력적인 장면과 사회적 이슈 때문이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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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도서관을 떠나기 전까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는 오래전 몰래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고, 또 어떤 이는 금서를 주제로 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제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시대가 변하고 책을 읽는 방식도 변했지만, 금서라는 개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정부나 사회가 검열을 했다면, 지금은 독자들 스스로가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였다.

그때, 강철이 다가와 말했다.

“이번 모임, 아주 좋았어요. 요즘 도서관이 점점 더 살아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은 언제나 이야기가 흐르는 곳이어야 하니까요.”

창밖에는 늦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도 도서관은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도, 또 다른 책이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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