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이 없는 세상

정윤희 소설

by 정윤희

초겨울의 찬바람이 도서관 앞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밤사이 떨어진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잎들이 바람에 흩날렸고,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잔뜩 흐린 하늘과 싸늘한 공기 속에서 도서관의 창문 너머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도서관 앞뜰에서는 아직 가을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계절은 점차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날, 행복도서관에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인생 설계 프로그램: 새로운 길을 찾다’. 이 프로그램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다시 설계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되었다.

제이는 도서관 로비에 설치된 프로그램 안내 배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단절된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이 이어져 온 과정일 뿐인데….’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도서관 문을 들어서는 참가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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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안은 조용했다. 참가자들은 아직 어색한 듯 서로를 힐끗거리며 눈인사를 나눴다. 김윤희는 주위를 둘러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10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경력이 단절되었고, 이제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 다시 일을 해야만 했다.

박소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는 IT 개발자로 일했었어요. 그런데 결혼 후 그만뒀죠. 그런데 지금 다시 취업을 하려고 보니 기술 변화가 너무 빠르더라고요.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그녀의 말에 몇몇 참가자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50세가 된 이선영은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젊었을 때 번역을 공부했었어요. 하지만 결혼 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잊고 살았죠. 이제 다시 번역 일을 하고 싶은데, 공백이 너무 길어 망설여져요.”

정미경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은행에서 일하다가 육아 때문에 쉬었어요.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이제야 저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오정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작은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음식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제이는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들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중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쉽게 그들을 멈춰버린 존재로만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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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의 첫 번째 세션은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초청 강사로는 심리 상담사이자 작가인 최윤정이 초대되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가정과 육아, 가족을 돌보며 살았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부족했어요. 오늘은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참가자들은 작은 조를 이루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윤희는 자신이 과거에 회계사로 일하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박소영은 코딩을 하며 밤을 지새웠던 젊은 날을 회상했다. 이선영은 번역을 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기억을 다시 꺼내보았다.

이어진 두 번째 세션은 ‘직업 탐색과 재취업 전략’이었다. HR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김 교수가 진행을 했다.

“변화하는 직업 시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파악하고, 여러분의 경험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그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직업군과 경력단절 여성이 활용할 수 있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정미경이 질문했다.

“저는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다시 돌아가려니 금융 시장도 많이 변했더라고요.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는 게 나을까요?”

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은행 경력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다만 금융업계의 변화에 맞춰 디지털 금융이나 핀테크 쪽으로도 공부를 병행하면 더 유리할 거예요.”

오정아도 손을 들었다.

“창업을 고민 중인데, 경험이 부족해서요.”

김 교수는 웃으며 답했다.

“창업은 신중해야 하지만, 요리 관련된 자격증을 따거나 작은 케이터링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참가자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했고, 영숙은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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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단발성 강연이 아닌 지속적인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평생교육센터와 함께 협력해서 진행을 했다. 제이는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도서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북클럽, 글쓰기 모임, 스터디 그룹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분을 도울 계획이에요.”

창밖에서는 한층 강해진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참가자들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자신감을 얻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제이는 도서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길 바란다. 인생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춘 것일 뿐, 그 자체가 결코 단절이 아니니까. 이 도서관이 그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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