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의 시화전

정윤희 소설

by 정윤희

차가운 바람이 도서관 앞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밤사이 내린 서리가 잔디 위에 하얗게 내려앉았고, 은행나무의 마지막 잎들이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흩날렸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유리창에 맺힌 성에가 서서히 녹아내렸고, 도서관 앞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몇 개 남아 겨울을 앞둔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알리고 있었다.

도서관 입구를 지나면 실내는 포근한 온기가 감돌았다. 따뜻한 난방이 들어온 도서관 내부에서는 책을 읽거나 신문을 펼쳐든 사람들이 겨울의 차가운 공기에서 벗어나 한껏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한편에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만든 미술동호회의 대표 박정수가 영숙과 마주 앉아 전시회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시화전을 개최하면 어떨까요?”

“시화전요?”

“우리 미술동호회에서는 우리 지역의 시인들과 협업하여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도서관이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전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제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박정수의 말을 들었다.

“도서관에서 책뿐만 아니라 예술을 함께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어요. 시와 그림이 만나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도서관과 지역 미술동호회가 함께하는 시화전이 기획되었다. 전시회는 한 달 동안 도서관 1층 전시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지역 시인들과 화가들이 협업하여 작품을 완성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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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가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도서관의 전시 공간에는 하나둘씩 작품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제이는 조심스럽게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한쪽 벽에는 붓터치가 부드럽게 흘러가며 자연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감성적인 시가 캘리그래피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이끌어 온 시인 윤경화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 시는 제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거예요. 늘 책을 끼고 살았던 제 모습이 그림과 함께 담기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한편, 지역 화가 김수완은 자신이 작업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그림은 윤경화 시인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어요. 시 속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정말 새로웠어요.”

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주부 송민영은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오기만 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열린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번 전시에도 제 작품이 걸리게 됐어요. 정말 감격스러워요.”

도서관을 찾은 방문객들도 전시 공간을 둘러보며 조용히 감상하고 있었다. 시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은 마치 한 권의 시집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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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개막식 당일, 도서관은 예상보다 많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미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며 박정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전시는 단순히 그림과 시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적 연결고리입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책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감동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진 순서로, 전시에 참여한 시인과 화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인 김민정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감정을 포착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 시를 쓰면서, 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감정을 화가님이 너무 잘 표현해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김수완 화가도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책과 시,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참 매력적이에요. 미술관에서의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요. 주민들이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고,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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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은 도서관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마주했다. 단순한 도서 대출 공간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의 역할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제이는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며 방문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시를 천천히 읽는 이들,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를 필사해 가는 학생들까지. 이 모든 모습이 그녀에게는 뿌듯한 장면이었다.

책이 주는 감동도 크지만, 예술이 주는 감동 역시 도서관에서 충분히 전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문화 행사를 더 많이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시가 끝난 후에도 제이의 마음속에는 예술과 문학이 공존하는 도서관의 미래가 더욱 또렷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창작과 표현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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