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늦겨울의 찬 공기가 도서관 창문 틈새로 스며들었다. 아침부터 흐린 하늘 아래, 마른 나뭇가지들이 가느다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서관 앞마당에는 노랗게 변한 은행잎들이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흩날렸다. 감나무에는 몇 개 남지 않은 감이 주홍빛으로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도서관 문을 드나들었고, 실내로 들어서자 은은한 난방의 따뜻함이 감돌았다.
행복도서관은 평소처럼 차분한 분위기였다. 창가 자리에는 책을 펼친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었고, 유아열람실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 입구 쪽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도서관 내부를 울렸다.
“제 아이가 사라졌어요! 혹시 보신 분 계신가요?”
도서관 한쪽에서 한 여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녀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여섯 살 아이예요. 빨간색 점퍼를 입었고, 곰돌이 모양 가방을 메고 있어요. 이름은 지유예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제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시고요.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아이가 어디서 마지막으로 보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이는 도서관 직원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사서 김지연과 시설 담당 윤기석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방송을 통해 안내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CCTV를 확인하며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유야, 어디 있니?”
엄마는 유아열람실과 화장실, 복도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 한 독서 모임 참가자가 다가와 말했다.
“조금 전에 어린이 코너에서 혼자 책을 보고 있는 아이를 본 것 같아요. 아마 그쪽에서 멀지 않을 거예요.”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어린이 코너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지유의 흔적이 없었다. 대신 바닥에는 작은 곰돌이 가방이 놓여 있었다.
“이건… 지유 거 맞죠?”
제이가 가방을 주워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가방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맞아요… 그런데 아이는 어디로 간 거죠?”
그 순간, 제이는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 그녀는 아버지와 숨바꼭질을 하며 도서관에서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책장 뒤에 몸을 숨겼고, 그녀는 온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아버지를 찾곤 했다.
“아빠, 어디 있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책 속에 숨었지! 넌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 기억이 떠오르자 제이는 무언가 깨달은 듯 엄마에게 말했다.
“혹시 지유가 평소 좋아하는 곳이 있나요? 아이들은 익숙한 곳에서 스스로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요.”
**
시간이 흐를수록 도서관 내부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직원들과 방문객들까지 합세해 도서관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지유가 화장실에 있는지, 계단 아래 숨어 있는지, 혹시 도서관 밖으로 나갔는지를 확인했다.
도서관 내부가 소란스러워지자, 한 아이가 2층 구석의 열람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작은 몸을 움츠리고 있던 지유였다.
“여기 있어요!”
사서 최은희가 소리쳤다.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 지유를 끌어안았다.
“지유야! 어디 갔었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지유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계속 전화만 해서… 혼자 조용히 책 보고 싶었어…”
순간, 엄마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녀는 아이를 더욱 꼭 안아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바빠서 네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구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영숙은 다시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숨바꼭질을 하며 아버지와 보냈던 그 순간들이, 지금의 지유와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지유가 무사히 발견된 후에도 도서관은 한동안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어린이 코너로 향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와 함께 책을 펼쳤다.
제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불안, 아이의 서운함, 그리고 서로를 찾고 다시 안도하는 순간까지—모든 것이 이 공간에서 일어났다.
창밖에는 어느새 늦겨울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 안은 여전히 따뜻했고,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평온하게 이어졌다. 책장 사이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이야기처럼, 도서관은 언제나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