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갈등 사이

정윤희 소설

by 정윤희

늦겨울의 찬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도서관 창밖으로, 봄을 알리는 미세한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행복도서관은 도서관 주간을 맞아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와 관련하여 지역 서점들과의 협업을 두고 사서 영숙과 강철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도서관과 서점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철이 도서관 회의실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최근 지역 서점 관계자들과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를 제이 앞에 내밀었다.

“지역서점 입장에서 보면, 도서관이 점점 서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어요.”

제이는 문서를 훑어보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거죠?”

강철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북토크, 저자 강연, 독서 모임 등이 서점에서 유료로 진행하려는 행사와 겹친다는 거예요. 서점은 결국 책을 판매해야 수익을 내는데, 도서관에서 모든 걸 무료로 제공하면 서점에 올 고객이 줄어들게 되죠.”

제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독서를 장려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서점 입장에서는 그것이 도리어 경쟁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제이의 머릿속을 스쳐 간 기억이 있었다. 어릴 적, 그녀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를 도서관으로 데려가곤 했다.

“제이야, 책은 언제나 길을 알려줄 거야.”

그땐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도 그녀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부모님이 남긴 따뜻한 기억이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부모님이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제이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일하던 직장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모습이 겹쳐졌다. 가족과 함께 책을 읽었던 도서관이, 지금은 그녀가 지켜야 할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강철은 서점들의 다양한 의견이 담긴 문서를 펼쳤다.

“이건 각 서점 대표들의 의견을 정리한 거예요. 한 번 읽어보세요.”


- 문예서점 대표 : “도서관에서 무료 강연이 많아지면서, 우리 서점에서 유료로 진행하던 북토크에 참석하는 사람이 줄었어요. 특히 지역 작가들과 협업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도서관 행사에 먼저 초대되면서 우리가 후순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고전문고 대표 : “도서관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현실적으로 서점이 손해 보는 구조라면 문제가 있죠. 도서관에서 신간을 너무 빨리 대출할 수 있게 하니까, 손님들이 신간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경우가 늘어났어요.”

- 이웃책방 대표 : “독서문화는 도서관과 서점이 함께 만들어 가야죠. 하지만 도서관이 북클럽 운영까지 맡아버리면, 서점에서 기획하는 모임이 줄어들어요. 도서관과 서점이 역할을 좀 더 명확히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는 문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었다. 서점들의 고민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철을 바라보았다.

“그럼 도서관은 아무런 문화 행사를 하지 말라는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날이 섞였다.

“책문화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도서관과 지역서점이 협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서점도 생존해야 한다는 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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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후에도 제이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도서관과 지역 서점이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강철이 전한 서점 관계자들의 입장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강철이 참석했다. 그는 책방에서 추천한 신간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요즘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들이 점점 서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아요.”

강철이 모임 중에 갑자기 말을 꺼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서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제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행사예요. 도서관과 서점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책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강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무료로 열면,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을 사지 않아도 되죠. 지역 서점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모임에 참석한 몇몇 독자들도 그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해결책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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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제이는 다시 강철을 찾아갔다. 여전히 도서관과 서점의 협업 모델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네요.”

제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서점도 살아남아야 하고, 도서관도 독서 문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방법이 쉽지 않아요.”

강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들끼리도 의견이 다 다르고, 도서관의 입장도 이해는 가요.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두 사람은 도서관 창가에 나란히 서서 늦겨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오늘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제이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도서관의 기억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뭐라고 조언하셨을까?’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서관과 서점의 공존, 그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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