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정윤희 책문화생태학자
Jul 25. 2019
20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요즘 더 생각난다. 외할아버지는 대구 달성서 씨라서 대구에서 태어나서 자라셨는데 일본으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가셨다가 운이 좋게 한국으로 도망쳐 오셨다고 한다. 고향으로 다시 가면 일본인들에게 잡혀 죽을까 봐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군산에 정착하셨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고향집에서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 채 사셨다고 한다. 나중에 해방이 되어서야 대구 집에 가셨다고.
우리 외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11살 많은 우리 외할아버지를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집안에서 결혼시켰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구순이 다 되어 가시는데, 지금도 가끔 이야기하신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한스러운 게 여자라고 공부를 안시 안 시켜준 것이라 하신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몰래 서당에 가서 닫은 문 앞에서 문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선생님 목소리 듣고 천자문을 따라 외우셨다고 한다. 선생님이 외워보라고 했는데 문밖에 있는 우리 외할머니가 천자문을 외우셔서, 밖에서 듣는 남례도 외우는데 왜 너희들은 못하냐고 남자아이들에게 꾸중을 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하고 싶었던 공부는 못하셨지만... 외할머니 남동생들(나에겐 할아버지들)은 그 옛날에도 모두 좋은 학교 나오셨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우리 손녀들에게 여자라고 집안에서만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운전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열심히 해라. 앞으로는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죽지 말아야 한다... 내가 조금 여성스러움이 있지만 당당한 면이 있는 게 우리 외할머니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시리고 아련함이 있다. 그 시대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더 슬프지만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내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 그때 할아버지 인생을 구술채록해두었어야 했다.
지금 외할머니 인생이라도 구술채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정책적으로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