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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Jan 26. 2022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5

4월은 잔인한 달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는 “4월은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 시작한다. 원작에서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4월에 유독 역사적 사건들이 많은 한국에서도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라일락을 소생하고 욕망과 기억을 뒤섞는” 달이라는 4월.


내 생일은 4월 7일이다. 하늘 같이 의지하고 사랑했던 할머니께서 고 3 생일 이틀 전에 쓰러지셨다. 바로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끼고 계시다가 정확히 생일 이틀 후인 9일에 돌아가셨다. 그다음에도 4월은 내게 잔인한 달일 때가 종종 있었다.


2012년의 4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일이자 토요일이었던 2012년 4월 7일, 아침 1교시 수업이 있었다. 서둘러 학교를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벌써 몸이 심상치 않았다. 골반이 삐그덕거리고 마치 관절이 녹슨 꼭두각시처럼 몸이 따로 노는 느낌? 찌르르 통증이 와서 샤워하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겨우 욕조를 의지해 몸을 일으키고 어찌어찌 나왔다. 청바지를 입는데 다리를 바지 구멍으로 꿰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남편에게 학교까지 운전을 부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픈 것보다는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굴렀다. 국제관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겨우겨우 난간에 의지해 힘겹게 올라갔다. 다행히 9시 정각에 도착했다. 그날 교실에서 썼던 작문은 아침에 힘겹게 학교에 왔던 일을 주제로 했었기에 10년이 다 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수업을 하나 더 듣고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학교 앞 맛있는 파스타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 때는 가족 모임이 있어서 고기를 먹었다. 머리고 옷이고 숯불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씻지 않고 잠들었다. 이 선택을 이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요 며칠 후 쓴 일기에 “고길 먹으면 샤워를 하자.”라고 쓰여 있다.


다음날인 일요일, 늦잠을 실컷 잤다. 컨디션이 회복됐을 줄 알았는데 웬걸.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나왔다. 좀 더 누워 있으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오후가 되도록 괜찮아지지 않았다. 휴일이다 보니 병원에 가도 응급실 말고는 갈 곳이 없을 텐데…?


컴퓨터를 많이 쓰고 편집을 많이 하는 직군이라 그런지 라디오 PD 동료들 중에는 유독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근골격계 질환 관련 병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중 자생한방병원을 추천하신 분도 많았다. 디스크 수술은 아직 하고 싶지 않고, 어차피 일요일이니 다른 병원에 가도 응급실만 열려 있을 테니 휴일 진료가 있는 자생한방병원으로 가 보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진료를 예약했다. (훗날 미국에서 이렇게 신속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시스템과 의료보험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됐는지… )


남편의 부축을 받아 차로 가는데 식은땀이 났다. 그때 우리가 타던 차는 아토스였다. 경차 중에는 그래도 넓은 축에 속한다. 중고로 물려받은 이 차를 10여 년을 타면서 크게 불만은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차 안이 어찌나 비좁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조수석을 최대한 뒤로 밀쳤는데도 몸을 말 그대로 구겨 넣어야 했다. 어느 정도 각도 이상 몸을 곧추 세우면 눈물이 찔끔 나왔다. 몸을 겨우겨우 걸치고 비스듬히 누워 발을 위로 올리고 압구정 자생한방병원 본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하고 기다리는 내내 의자의 네 칸을 다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진료 시간이 다 됐는데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진료실로 들어갈 때 내 모습은 영락없이 물의를 일으킨 재벌 회장의 모습이었다. 수수하다 못해 초라한 옷차림, 헝클어진 머리에 초췌한 표정, 트레이드 마크 휠체어까지.


당시 내 상태는 보나 마나 입원이 답이었다. 그러나 입원을 권하는 선생님께 나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제가 얼마 전에 대학원에 가서요. 학교를 가야 해요. 오늘 침 맞고 약 먹고 통원치료를 하면 안 될까요?”


“환자분, 지금 보니까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데 학교를 가실 수 있겠어요?”


“…”


“글쎄요. 입원해 이후 경과를 봐야겠지만, 입원하고 집중치료를 해도 한 한두 달은 예상됩니다.”


“… 그렇게나 오래요?”


“네. 일단 바로 입원하시죠.”


진료가 끝나고는 몸이 더 움직이질 않았다. 이번에는 휠체어도 아니고 들것에 실려 입원실로 가게 됐다.


그렇게 나는 벚꽃이 아름답던 4월의 캠퍼스를 뒤로 한 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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