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닷빛 Feb 02. 2022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6

장밋빛이기만 한 인생은 없다

아니 유학생 부인 이야기라면서 대체 유학 이야기는 언제 하려고 딴 얘기만 하지? 남편 학교 얘긴 왜 안 하고, 자기 대학원 간 얘길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입원 이야기는 또 왜?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곁가지로 새어갔다는 거 인정한다.  안다. 그런데 삶이란 게 그렇지 않나. 직선으로만 갈 줄 알았는데 굽이굽이 가는 길도 있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시간들이야말로 유학생 부인의 삶을 가장 잘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유학생의 시간만 느리게 가는 게  아니다. 유학생의 ‘덤’이라 여겨지는 유학생 부인의 시간은 유학생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느리게 흐른다.


학생의 동반자 비자로 나오는 F2 비자는 쓰레기 비자라는 농담을 종종 들었다. 사실 말이 좋아 ‘동반자’지, 정식 명칭  자체가 dependent visa(부양가족 비자)다. Dependent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F2는 F1이 제대로 유지된다는 조건에 '종속'되어 발급되는 비자다. F2는 미국에서 영리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F1은 그나마 학교에서는 돈을 벌 수 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냥 F1 비자 소유자 옆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 허용된 비자다. (지금은 규정이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비자를 받던 당시에는 F2는 풀타임 학생이 될 수 없는 것은 물론, 수료증을 주는 정규 과정에 등록해서 공부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자립(independent)은 내게 중요한 문제였다. 어디까지는 반드시 오르고야 말겠다는 대단한 야망을 품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업 주부의 삶을 꿈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엄마가 전업 주부였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다른 전업주부와는 좀 다르긴 했다. 일단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잘 없었다. 뭘 배우거나 봉사를 하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친목 생활로 늘 바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만 해도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종종 있었다. “아니, 엄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는 거야?”라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이를 좀 더 먹고,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활동을 했던 엄마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엄마도 차라리 계속 일을 했다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고도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반드시 ‘내 일’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하겠노라 결심했던 것 같다.


전업 주부의 삶을 마냥 고귀하게  생각도, 반대로 폄하할 생각도 없다. 무엇보다도 명함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노동' 없다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다. 전업주부의 '' 다고...? , 직장을 갖는지 여부는 자신의 취향이나 적성, 능력, 상황에  따라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모양처가 꿈인 사람도 주변에 있다.  어떤 ‘바깥일보다 살림과 육아가 훨씬  적성에 맞고 보람될 수도 있다. 그게 가족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분명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반대로 달라진 시대 분위기나 경제 상황 때문에 직장으로 '떠밀리는' 여성도 있을  있다. 어떤 선택이 절대적으로 낫다고 누가 감히 말할  있으랴. 나는 오직  자신을 위한 답만 내릴  있을 뿐이다.



아직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생방을 앞두고 빠르게 점심을 먹고 종종걸음으로 회사로 돌아가곤 할 때면, 세상 여유롭게 오후의 햇살을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었다. 브런치 모임을 하는 아마도 전업주부일 저들이 직장인인 우리보다 오히려 더 ‘자아실현’에 가깝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라디오 PD 선배도 있었다.


그때 마주쳤던 여유로운 사람들도 알고 보면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악착같이 누리던 여의도에 흔하디 흔한 직장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전업주부일 수도 있었을  거고, 그야말로 꽃길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들도 시간과 돈의 자유를 누리는 언제나 장밋빛이기만 한 인생이었을까? 어쩌면 아주 잠시 집안일과 육아를 잊고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와 단 몇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있던 전업 주부였을지도 모른다. 하필 그 순간에 마주친 우리 눈에만 그들의 인생이 세상 행복해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남들이 볼 땐 ‘접속’, ‘봄날은  간다’, ‘라디오 스타’ 등에 나오는 (아, ‘라디오 스타’는 좀 아닌가 ㅎㅎ) ‘세상 멋지고 여유로운(!)’ 라디오 PD의 현실이나 일상이 사실 그렇게까지 밝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여하튼 2012년 4월, 한 달간의 병원 생활은 내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ㅈ 님을 만난 게 계기가 된 듯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