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ㅈ님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나요
“ㅈ님은 종달새가 아닐까 싶으실 정도로 유창한 언변을 자랑하신다. 혼잣말, 전화 통화, 대화 등 말하기의 모든 영역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이신다. 디스크는 왜 생기는지, 병원의 시스템이 어떤지, 오는 길은 어떤지, 음식 맛이 어떤지, 자식이 몇인지, 묻지 않아도 몸소 답해주신다. 얼마나 친절하신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교회 봄놀이를 못 가는데도 20만 원을 내셨다는 “인정 많은” ㅈ님은 그 모임의 총무로서 오늘의 궂은 날씨를 깔깔깔 웃으며 비통해하는 신공을 보이신다.”
입원 당시 페북에 연재했던 ‘501호 사람들’이라는 병실 일지의 첫 화이다. ㅈ님은 내가 입원했던 501호에 내가 입원한 지 열 하루 되는 날 입실하신 분이셨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으셨던 ㅈ님은 내 입원 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공동생활은 쉽지 않다. 목 디스크나 허리 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아파서 입원한 병원의 6인실이니,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어 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다. ㅈ님이 등장하시기 전까지는.
‘501호 사람들’에서 ㅈ님을 묘사한 부분을 보다 보니 당시 내 기분이 생생히 되살아나 웃음이 난다. 조금 더 옮겨 본다.
“ㅈ님의 활약상을 내 짧은 필력으로는 도무지 표현할 재간이 없다. 도대체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그분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병실 사람들이 3일 만에 다 알았을 것이라는 거? 나이아가라 폭포 저리 가라 쏟아지는 말끝마다 자기 자랑과 남 욕이 이어진다는 거? 자기 손님이 아니라도 누가 오면 뚫어져라 쳐다보고 참견한다는 거? 대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고 혼잣말에도 지치면 전화를, 그것도 자리에 누워 병실 전화로 일가친척과 교회 지인들에게 쫙 돌린다는 거? 새벽에도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꼭 병실 싱크대에서 손 씻는다는 거? 병실 안에서 구역질하듯 가래침을 뱉어대는 거? 젊은 사람들이 로션 바르는 거 보면서 화장품 바르는 걸 보니 안 아픈 사람 같다고 하면서 자기의 엄청난 고통을 모험이라도 되는 양 굽이굽이 풀어놓으며 디스크는 참 무서운 거라고 모두에게 일장 연설을 펼치던 거?”
…ㅈ님과 신경전을 하는 “유별난 아가씨”가 되었던 나는 결국 ㅈ님의 퇴원을 며칠 앞두고 이실을 했다. 현실이 때로는 어떤 픽션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법이다. 아직도 ㅈ님의 실명만 생각하면 그 아이러니한 이름에 쓴웃음이 난다. 어쩌면 ㅈ님은 평생 그 이름에 눌리지 않고 싸우는 삶을 살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ㅈ님은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다. 사실 그때도 모르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썼던 병실 일지 "501호 사람들"의 프롤로그에는 “외롭고 외로운 자길 좀 봐달라는 애달픈 외침 같은 게 아니었을까. 물론 애달픈 외침치고는 ㅈ님이 매우 과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 나이 먹도록 여태 외로움을 해소할 방식을 그렇게밖에 못 찾은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 생각하면, ㅈ님은 은인이다. 한 달의 긴 입원생활을 병실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ㅈ님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고발하는(!) 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처음으로 ‘쓰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소통으로서의 글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어도 그냥 쓰면 좋고 아님 말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지, 감히 내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ㅈ님은 반면교사로서의 역할 또한 출중했다. 외로움이 지나쳐 모두를 괴롭히는 중년 여성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옆에서 보면서 외로움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당시 나는 아직 "그 나이"가 주는 무게를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직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폭주기관차처럼 들이닥치겠지. 그 나이의 무게를 나는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분을 통해 자랑이나 험담 퍼레이드로 내 삶을 채우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우리 애가 차를 언제 어떻게 새로 뽑았고, 나 아는 사람이 이 병원 원장이랑 친구인데" 등 묻지도 않은 내용을 읊어대며 내 초라한 외로움을 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이 뭐라든 상관없이 그냥 내 갈 길을 가면 그만이라고 다시 한번 결심하기도 했다.
말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