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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Feb 23. 2022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7

지금도 ㅈ님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나요

“ㅈ님은 종달새가 아닐까 싶으실 정도로 유창한 언변을 자랑하신다. 혼잣말, 전화 통화, 대화 등 말하기의 모든 영역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이신다. 디스크는 왜 생기는지, 병원의 시스템이 어떤지, 오는 길은 어떤지, 음식 맛이 어떤지, 자식이 몇인지, 묻지 않아도 몸소 답해주신다. 얼마나 친절하신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교회 봄놀이를 못 가는데도 20만 원을 내셨다는 “인정 많은” ㅈ님은 그 모임의 총무로서 오늘의 궂은 날씨를 깔깔깔 웃으며 비통해하는 신공을 보이신다.”



입원 당시 페북에 연재했던 ‘501호 사람들’이라는 병실 일지의 첫 화이다. ㅈ님은 내가 입원했던 501호에 내가 입원한 지 열 하루 되는 날 입실하신 분이셨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으셨던 ㅈ님은 내 입원 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공동생활은 쉽지 않다. 목 디스크나 허리 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아파서 입원한 병원의 6인실이니,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어 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다. ㅈ님이 등장하시기 전까지는.


‘501호 사람들’에서 ㅈ님을 묘사한 부분을 보다 보니 당시 내 기분이 생생히 되살아나 웃음이 난다. 조금 더 옮겨 본다.


“ㅈ님의 활약상을 내 짧은 필력으로는 도무지 표현할 재간이 없다. 도대체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그분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병실 사람들이 3일 만에 다 알았을 것이라는 거? 나이아가라 폭포 저리 가라 쏟아지는 말끝마다 자기 자랑과 남 욕이 이어진다는 거? 자기 손님이 아니라도 누가 오면 뚫어져라 쳐다보고 참견한다는 거? 대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고 혼잣말에도 지치면 전화를, 그것도 자리에 누워 병실 전화로 일가친척과 교회 지인들에게 쫙 돌린다는 거? 새벽에도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꼭 병실 싱크대에서 손 씻는다는 거? 병실 안에서 구역질하듯 가래침을 뱉어대는 거? 젊은 사람들이 로션 바르는 거 보면서 화장품 바르는 걸 보니 안 아픈 사람 같다고 하면서 자기의 엄청난 고통을 모험이라도 되는 양 굽이굽이 풀어놓으며 디스크는 참 무서운 거라고 모두에게 일장 연설을 펼치던 거?”


…ㅈ님과 신경전을 하는 “유별난 아가씨”가 되었던 나는 결국 ㅈ님의 퇴원을 며칠 앞두고 이실을 했다. 현실이 때로는 어떤 픽션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법이다. 아직도 ㅈ님의 실명만 생각하면 그 아이러니한 이름에 쓴웃음이 난다. 어쩌면 ㅈ님은 평생 그 이름에 눌리지 않고 싸우는 삶을 살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ㅈ님은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다. 사실 그때도 모르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썼던 병실 일지 "501호 사람들"의 프롤로그에는 “외롭고 외로운 자길 좀 봐달라는 애달픈 외침 같은 게 아니었을까. 물론 애달픈 외침치고는 ㅈ님이 매우 과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 나이 먹도록 여태 외로움을 해소할 방식을 그렇게밖에 못 찾은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 생각하면, ㅈ님은 은인이다. 한 달의 긴 입원생활을 병실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ㅈ님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고발하는(!) 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처음으로 ‘쓰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소통으로서의 글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어도 그냥 쓰면 좋고 아님 말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지, 감히 내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ㅈ님은 반면교사로서의 역할 또한 출중했다. 외로움이 지나쳐 모두를 괴롭히는 중년 여성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옆에서 보면서 외로움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당시 나는 아직 "그 나이"가 주는 무게를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직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폭주기관차처럼 들이닥치겠지. 그 나이의 무게를 나는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분을 통해 자랑이나 험담 퍼레이드로  삶을 채우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우리 애가 차를 언제 어떻게 새로 뽑았고,  아는 사람이  병원 원장이랑 친구인데"  묻지도 않은 내용을 읊어대며  초라한 외로움을 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이 뭐라든 상관없이 그냥   길을 가면 그만이라고 다시 한번 결심하기도 했다.


말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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