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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Nov 05. 2021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2

유학생 부인 같은 건 뭘까

이 책의 씨앗은 7년 전에 뿌려졌다. 유학생 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너는 유학생 부인 같지 않아서 좋다.”


유학생 부인과 여자 유학생 사이의 알력이 있다면서 해준 말이었다. 분명 칭찬 같았다. 악의가 없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기분이 이상해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서글프거나 화가 났던 건 아니었다. 그때는 그 뒤에 올 어려움을 아직 몰랐을 때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휴직 중이라 수입이 없기는 했지만, 아직 직업이 있었다. 유학생 남편을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나도 자비 연수로 마케팅 수업을 듣고 있을 때다. ‘유학생 부인’에 소위 올인하진 않았던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유학생 부인’이라는 이름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도 모를 ‘유학생 부인’이라는 정체성이 나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였다. 그 이름표를 붙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이 나도 모르게 싹트기 시작했다. 


더는 휴직 연장이 되지 않는 시점.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도 지금도 ‘퇴사’였지 ‘퇴직’은 아니었다. 무슨 직업이든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UCLA Extension의 마케팅 과정을 이수하고 OPT로 한인 광고회사에 취직이 결정된 후였다. (무모하다고는 해도, 내 살 길과 궁리는 해 놓는 사람이다.) 비록 그 광고회사도 업무와 비자 등의 이유로 결국 오래 다니진 못 했지만 말이다.


얼마 후, 다른 유학생 부인을 만나게 됐다. 본인도 공부를 했었지만, 남편과 다시 살림을 합치면서 진로를 자연스레(?) 포기하게 된 사람이었다. 

“지윤이 너는, 유학생 부인 중 가장 바람직한 모습인 것 같아.”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평가의 근거는 내가 당시 광고회사를 나와 번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제활동이라는 것도 슬프게도 변변치 않은 수준이었다. 통번역대학원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알음알음 들어오는 일 외에는 받지 못했다. 그나마 이제 겨우 번역자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출판 번역을 하고 싶었지만, 진입이 쉽지는 않았다. 월 천만 원을 버는 화려한 프리랜서가 화제라는데, 당시 내 소득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니 그것보다도 더 낮아졌지만;;;) 연 천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였다. 그것도 아이가 없을 때의 일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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