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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Nov 19. 2021

테트리스 귀재와 청문회 증인

그리고 그들과 동거하는 나


요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요리와 끼니 챙기기는 별개의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어제는 그러니까 밥 차리기가 너무 싫었던 것이었더랬다. 밥도 있고, 끓여 놓았던 순두부찌개가 매운 버전, 안 매운 버전 두 개나 있고 했는데도 말이다. 계속 삼시 세끼 차리고 해 먹고 치우고를 혼자 하다 보니 좀 지쳤거니와 계란도 떨어지고 냉장고도 꽤 비었기에 남편을 꼬셔 코스트코로 향했다. 시아는 코스트코에, 그것도 다 같이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펄쩍펄쩍 뛰었다. “예에에에에! 코스트코!!!”


끼니를 해결하기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가자마자 밥을 먹었다. 치킨 베이크 하나, 핫도그 하나, 피자 하나를 시켜 셋이 나눠 먹었다.  보러  때는  속이면 많이 사게 되니  먹고 가는  좋다고 하던데 말이 무색하게도 장을 어찌나 열심히 봤는지 고기류를 하나도  샀는데 300불이 넘었다 (코스트코   3 정도 됐나? 그래도 요샌 한인마켓 종종 갔는데…) 요새 물가가 치솟는다는    때마다 실감한다. 사실 와인을 포함해 이것저것 많이 사기는 으니  말은 없다. 냉장고에  넣을  있을까 걱정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괜찮다. 우리 집 테트리스 귀재가 있으니까. 그렇다. 남편 군을 출동시키면 된다. 요리조리 야무지게 쌓아두고 내심 뿌듯했나 보다. 시아 재우고 나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내가 아무런 멘트가 없는 걸 보고 “되게 정리 잘하지 않았어?”라고 내 옆구리를 찌른다. 바로 납작 절을 해줬다. “응. 완전 최고! 테트리스 귀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이 정도쯤이야.)


반면 우리 집 꼬맹이는 요새 걸핏하면 기억이 안 난단다. "시아 어렸을 땐 치킨 베이크 진짜 싫어했는데…."라는 말에 기억 안 난다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바로 전에 한 말 기억 안 난다고 하는 건? (그것도 때론 실실 웃으면서? 아우 정말. 너 내 딸이지만 정말.)


오늘만 해도 그렇다. 같이 앉아 있다가 저녁을 차리려 나가려고 일어나려는데 시아가 내 등에 매달렸다. 참고로 다섯 살 시아는 정. 말. 무겁다. 키가 크면서 배가 좀 홀쭉해졌었는데 그것도 잠시 뿐. 다시 올챙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볼록해졌다. 키도 훌쩍 커서 반에서도 중간은 넘는 것 같다. (시아 반은 킨더랑 1학년 합반이라 키가 중간치를 넘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런 애가 억지로 업혔으니 아무리 앉아 있었어도 힘들었다. 비키라고 세 번은 상냥하게 말해줬다. 그다음에는 다섯 셀 때까지 비키지 않으면 엄마가 떨치고 일어날 거라고도 말해줬다. 다섯을 세는데 움직일 기미가 없길래 확 뿌리쳤다. 시아가 나동그라졌다. 나동그라졌다고는 하지만 푹신한 매트리스 타퍼 위에 같이 앉아 있다가 뿌리친 거라 사실 큰 충격은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그렇게 던져놓고 가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지켜보는데 약간의 멈칫거림 후 시아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당시 시각 6시 10분 전. 7시에 웨비나가 있어서 저녁을 빨리 먹어야 되는데 시계는 벌써 6시를 향해 가고, 애는 울기 시작했고 요새 격무에 지친 남편은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울고 싶다, 얘야.)


“아봐아 아퐈아~~!!” (그러고 보니 아프다고 한 걸까 아빠를 부른 걸까)

“시아야. 엄마가 아까부터 비키라고 말했잖아.”

“아퐈아아아 아퐈아아아아~~”

“휴. 그래. 많이 아파? 속상해? 그럴 수 있지.”

“아퐈아아아~ 아퐈아아아~”

“어. 시아 속상하고 울고 싶을 수도 있어. 그럼 시아가 진정될 때까지 엄마가 좀 안아줄게. 근데 오래는 못 기다려줘. 엄마 오늘 웨비나도 있어서 빨리 가서 밥 하고 먹어야 된다고 얘기했었지?”

“아퐈아아아아아~~~”

“그래도 1분은 기다려 줄게. 1분은 60초라고 가르쳐줬지? 60부터 같이 세 보자. 60, 59, 58, 57, …”


시아가 진정한 건 47쯤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약속대로 0까지 카운트다운을 마쳤다.


“시아야. 이제 진정이 좀 됐어?”

“응.”

“엄마가 다섯 셀 때까지 안 비키면 시아 밀치고 일어날 거라고 얘기했잖아. 그치?”

“기억이 안 나는데?”

“방금 얘기한 건데 기억이 안 난다고?”

“응. 기억 안 나.”


… 청문회 좀 다니셨나 봐요, 따님.


그렇다. 나는 테트리스의 귀재와 청문회 증인과 동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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