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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Nov 20. 2021

2년 전 오늘

그리고 지금

오늘 아침, 시아가 목 놓아 울었다. "엄마 일하면 안 돼! 일하지 마! 유치원 안 갈래." 그렇게 삼십 분은 씨름하다가 유치원에 지각했다. 느지막이 나타난 데다 나나 시아 표정이 안 좋아 보였는지, 선생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먼데이 블루스군요." 유치원에서 헤어질 때 늘 하던 대로 열을 세고 똥 씹은 표정으로 돌아서는데, "뽀뽀! 허그!"를 다급하게 외치는 시아를 또다시 가만히 꼭 안아주고 다시 돌아 나섰다.


분명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도 많다. “엄마는 시아가 울어도 짜증 내도 예쁜 짓을 할 때도 미운 짓을 할 때도 사랑해.”라고 얘기할 때 "고마워. 나도 사랑해."라는 대답을 들을 때나 장난기 가득한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내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어 주며 사랑을 속삭여줄 때,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감정을 맛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벅차 오는 무언가가 있다.


반면 꼭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싶을 때도 많다. 징징 모드가 극에 달하고, 옆에서 엄마가 손을 잡은 채 잠들어야 하는 것도 모자라 (깜깜한 방에서 한 시간도 넘게 있다 보면, 아무리 이 기회에 명상을 해보자 결심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새벽마다 우리 침대로 건너와서 내 단잠을 방해하는 시아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은 번역 원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 기분이 특히 심하다.


아이의 촉은 날카롭다. 이런 내 기분이 전달되겠지. 나도 안다. 같이 놀아주던 윤수 이모도 떠나고, 아빠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늦게 오고, 주말에 엄마는 자꾸 혼자 일하러 나가고. 무슨 일인지 엄마 아빠가 싸우는 눈치고. 여러 모로 불안하겠지. 안 그래도 엄마 껌딱지인데 기를 쓰고 내 편인 엄마를 확보하려고, 자기 전만이라도 같이 있어달라고 울며불며 사정하고 싶겠지.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의 원흉은 엄마의 일이라 느꼈을 거다. 그래서 그렇게나 엄마 일하지 마 일하면 안 된다고 목놓아 울었으리라. (아니야. 시아야, 엄마가 일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원흉은 아빠야,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 이 기회를 빌려 아빠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싶지만... 이성의 마지막 끈을 부여잡아 본다.)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올 때 선생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시아가 '내 거 엄마야'라면서 내게 매달릴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나는 세상 쿨하게, "미안해 시아야, 엄마는 엄마 꺼야."라고 한다. 그리고 "시아는 누구 거지? 시아도 시아 꺼야. 알았지?"라고 덧붙인다.


아이를 갖기 한참 전부터 결심한 게 있었다. 카톡이든 페북이든 내 프로필 사진만큼은 꼭 아이 사진으로 하지 않겠다고. 괜히 비장한, 시답잖은 고집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건 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작은 다짐이었다. (그렇다고 아이 사진을 프로필로 올리는 것을 비난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나도 그러고 싶은 걸 어렵게 참는다. 작은 타협점이 둘이 같이 나온 사진을 올리는 거다.)


어제도 “엄마랑 같이 잘래!”라고 대성통곡하는 시아를 부둥켜안고 가만가만 이야기해주었다. “시아야,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많이 속상해? 그런데 엄마도 엄마 일이 있어. 지금 사실 엄마가 집안일을 하고 시아를 보느라 계속 미뤄만 와서 할 일이 너무 쌓여서 큰일이 났어. 그런데 계속 그렇게 엄마 일을 미루기만 하다 보면 엄마도 모르게 아빠랑 시아를 많이 미워하게 될 거 같아. 근데 엄마는 안 그러고 싶거든? 그러니까 엄마 좀 도와줘. 시아 그렇게 울면 시아도 목이 아프고 엄마도 마음이 아파. 이제 뚝 그치자. 시아는 이제 해바라기 반 언니 아가니까 이해할 수 있지?”


이해해 줄지는 모르겠다. 아니,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서른몇 살 연장자도 있는데 이제 고작 세 살배기인 애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 그래도,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미안해 시아야. 엄마도 엄마를, 엄마 일을 제일 소중하게 대해보려고 해. 당분간만이라도 말이야.


위 글을 쓴 게 산호세('새너제이'가 표준어라지만 그렇게는 못 쓰겠군요)로 이사 오고 4개월쯤 됐을 때였다. 가족 방문과 여행, 시아 생일, 이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며 이제 좀 번역해볼까 했더니 회사 일에만 열중하던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한창 받던 시기였다. 게다가 잠시 여행 왔다가 베이비시터 노릇을 톡톡히 했던 사촌동생이 돌아가고 다시 독박 육아로 힘겨워하던 때였다. 낮에는 시아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도서관에 나가 일하고, 간혹 남편이 회사에서 오면 시아를 떼 놓고 카페로 가서 일하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어렵게 번역했던 책은 결국 여러 사정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다행히 원고료는 받았다).


그 사이 시아는 많이 컸다. 당시 다니던 유치원을 졸업하고 올해부터 학교에 다닌다. 미국은 의무교육이 만 5세 킨더가든 과정부터 시작된다. 사설 유치원을 다닐 때는 9시부터 5시까지는 내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8시 15분에서 1시 55분까지만 자유다. 그래도 이제는 밤에 같이 수면 의식을 하고 "안녕!"하고 나오면 혼자 잠들고 아침까지 쭉 자기 방에서 잔다. 대신 이제 학교 공부도 신경 써 줘야 하고, 같이 들여다봐줘야 하는 게 많아진다. (한국학교도 다니다 보니 숙제가 두 배다.) 아이가 커갈수록 같이 챙겨서 봐줘야 할 게 많아서 손이 더 많이 간다는 시아보다 세 살 위인 딸을 둔 지인의 말을 들으니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그러나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나. 고민만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일단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고민에 머무르지 않기로 한다. 대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해 본다. 


10여 년 전부터 밀었던 내 모토는 '내 인생 내가 대세'다. 나에게 집중해서 길을 찾아나가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안 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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