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는 서로가

<미스 스티븐스>

by 우장산 오소리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많다. 바로 현재를 살고 있는 모두. 요즘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틈은 내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 물꼬가 될 작품이다.

학교의 연극부에서 연기하는 세 학생을 연극제에 데려다 줄 인솔 교사로 자원한 미스 스티븐스. 빌리는 뭔가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하면서도 자신과 잘 맞는 미스 스티븐스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큰 사건이 있거나 기승전결이 뚜렷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세 학생을 연극제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벌어지는 사소할 수도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어서 주제가 명확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나고 나서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 중 하나다.

연극제를 위해서 왔지만 빌리는 미스 스티븐스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그녀와 둘 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들도 한다. 미스 스티븐스는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식으로 적절히 차단하려고 한다. 하지만 빌리는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스티븐스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고 다가와서 기대고 기댈 곳을 흔쾌히 내주려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직업,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틀 안에 스스로 가두다 보니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내가 기댈 곳을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내는 것이다.

우린 서로를 안아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우리 주변의 가족, 친구, 선생님, 나보다 윗사람 혹은 아랫사람 할 것 없이 우린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우린 스스로 강한 척하고 애써 괜찮은 척 비틀거리고 있지만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맘을 열면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는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 '미스 스티븐스'인 것도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빌리는 스티븐스와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자 본명인 레이첼이라고 부른다. 스티븐스는 당황하고 황당스러워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미스 스티븐스라는 사회적인 틀이 있고 레이첼이라는 자신의 모습이 있을 것인데 누군가 그 틀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니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미스 스티븐스를 넘어 레이첼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서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힘들었겠다, 고생했다, 잘했다 같은 말들도 좋지만 가만히 얘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우린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기댈 곳이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는지. 날 알아줄 사람은 없다는 단정을 하기 이전에 마음의 틈이 누군가가 들어올 정도가 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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