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폐기하는 세상
오늘은 읽다 만 책을 다 읽겠노라고 다짐하며 책을 폈지만, 결국 읽다 만 책 두 권 다 읽지 못했다. 재밌는 드라마는 밤을 새워서라도 정주행 쌉(!)가능인데, 밤을 꼴딱 새우며 읽을 만한 재밌는 책이 요즘 잘 없는 것 같다. 뇌가 너무 도파민에 절여진 것일까... 숏츠처럼 가슴에 와 닿기도 전에 다 타버리고 마는, 짧고 자극적인 컨텐츠에 길들여지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요즘 노래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최근 히트를 한 '아파트'처럼 전주없이 바로 노래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주를 듣고 노래를 들을 때가 훨씬 좋은 나로써는 요즘 트렌드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과거에는 아무리 특정 가사와 멜로디가 좋다고 해도 노래를 토막 내 듣는 경우는 없었다. '노래'라고 하면 전주와 후주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 결코 가사가 있는 부분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현대인들은 10초만 듣고 노래를 들을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한다고 한다. 찰나의 시간 안에 모든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요즘 노래가 도입부에 가장 힘을 주게 된 것. <벚꽃엔딩>이나 <벌써 일 년>처럼 전주만 들어도 세포가 스멀스멀 반응하며 감정선이 서서히 올라가는 노래를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근래에 그런 노래가 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도 시작부터 가사가 나온다.)
문학계에서도 이렇게 집중력을 짧은 독자들을 위해 '초단편'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을 선보이고 있다. 원고지 12매에서 20매 사이, 4-5페이지 분량으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소설이 나온다. 확실히 읽기는 편하다. 10분이면 하나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있으니 성취감도 크고. 하지만 '초'단편은, 이름에 '단편'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단편 소설과는 명확히 다른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단편에서 기대했던 서늘한 여운 같은 것들이 초단편을 읽을 때는 좀처럼 없었다.
김연수 작가였던가. 단편과 장편의 차이를 이렇게 소개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께서 제과점을 하셨는데, 평일 내내 파리만 날리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가족이 동원되어 빵을 포장해야 할 정도로 바빴단다. 김연수 작가는 장편소설은 평일의 모습이 대부분이고, 잠깐 크리스마스가 언급되는 반면, 단편소설은 크리스마스 날의 이야기만을 다룬 것이라 말했다. 초단편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붙은 달달한 설탕 장식품 같은 느낌이랄까. 달긴 단데 별로 영양가가 없어보인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을 때의 강렬함도 없다. 단편 소설도 좋아하지만, 나는 장편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비춰 생각해본다면, 장편 소설의 인기가 점점 줄어들 것 같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 앞으로 초단편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독자로서 그건 좀 아쉽다. 눈과 머리, 가슴까지 내려오는 깊은 여운을 느끼려면 적정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눈을 현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폐기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